민선 7기, 은평구 공공정책과 문화정책의 방향

민선 7기, 은평구 공공정책과 문화정책의 방향

은평구청 정책실장 채희태


1. : 문화의 시대적 역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근대 문명은 ‘분업화’된 ‘전문성’의 결과이다. 산업혁명을 통해 자연에 의지했던 농경에서 벗어나게된 인류는 갈수록 복잡해지는 산업사회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많은 일들을 분화시켰고, 그 안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축적해 왔다. 그렇다면 문화 전문성도 산업사회의 필요성에 의해 분화되었을까? 주지하다시피 문화를 뜻하는 영단어 ‘culture’의 어원은 ‘경작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cultura’다. 문화는 인류의 직접적 생존 방식이었던 노동(경작) 행위에서 비롯되었지만, 이미 산업사회 훨씬 이전부터 그 본질인 노동과는 무관하게 성장해 온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노동과 문화의 분화는 양가성이 있다. 만약 문화가 여전히 노동의 이면으로 존재했었다면, 그 빛나는 성취는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문화는 노동으로부터 분리되면서 비로소 전문적이고 독자적인 성장의 길을 걷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하게 분화되었다. 문화가 곧 예술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의 분화와 발전은 예술을 포함하고 있는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각주:1] 메디치 가문의 지원이 없었다면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나 ‘다비드’ 같은 작품을 창작할 시간에 농사를 지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모차르트에게 거액의 작곡비를 지불한 ‘프란츠 폰 발제크 백작’의 이름으로 초연되었다. 반면 문화는 계급사회에서 지배계급의 지배를 정당화시키는 억압의 망치 역할을 세련되게 수행하기도 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계급 사회에서 지배와 불평등을 당연하게 인식하도록 하는 것은 문화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브르디외가 제2의 본성으로 규정한 아비투스, 즉 계급은 문화적으로 당연하게 인식되었기에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의 억압과 착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문화와 힘겨운 투쟁을 해야만 했다. 모든 사회 체계들이 그러하겠지만, 무형, 무색, 무취로 존재하는 문화야말로 시대를 ‘유지’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자 도구였다. 


중세, 근대, 탈근대의 문화

노동과 분화된 문화는 중세와 근대, 탈근대를 거치는 과정에서 늘 시대와 적극적으로 상호작용을 해 왔다. 소위 탈근대라고 이야기하는 현재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세와 근대와 함께 살펴보는 것이 비교적 유용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린 것이 아니라 중세가 근대로, 근대가 다시 현재로 이어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문화정책을 이야기 하는데 굳이 왜 현재를, 그것도 중세와 근대를 함께 묶어 이해해야 하는지 그 번거로움에 혹시라도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 부연한다. ‘정책’으로써의 문화는 문화적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쓸모를 가지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진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백혈병 환자에게 암 처방을 해 놓고 병이 낫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게다가 사회 문제는 과학의 진보에 의해 합의된 의학과는 다를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축적해 가고 있는 복잡한 체계들 간의 합의도 쉽지 않다. 하여 근대에서 벗어나고 있는 현재의 문화를 이해하고 진단하기 위해 과거로부터 이어진 수직적 인과관계를 살피고자 한다.

지구를 지배했던 것은 애초에 자연이었다. 자연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관계를 통해 ‘이성’을 갖게 되리라고는 지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관계를 통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관계의 밀도를 더욱 높이기 위해 동물적 본성을 억누르는 과정에서 이성이 생겨났고, 나아가 인지혁명을 통해 분절적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성적으로 자연을 관찰한 결과를 언어와 문자를 통해 후대에 전달했다.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었던 자연의 규칙을 이해하게 되면서 지구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다. 자신이 이 땅의 지배자라며 오만에 빠진 인간을 통제한 것은 다름 아닌 신이었다. 소위 암흑의 터널이라고 불리는 중세에 진입한 것이다. 신의 권위는 역설적으로 십자군 전쟁을 통해 동방의 문물이 서방으로 연결되면서 도시국가의 발달 - 르네상스 - 종교개혁을 거치며 인간에게 부정 당한다. 드디어 인간은 신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지구의 지배권을 되찾았으며, 한 철학자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신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인간은 절대 이성을 추구하며 신에 다가가고자 했다. 절대 이성에 브레이크를 건 것은 ‘꿈의 해석’을 통해 인간의 동물적 욕구를 재조명한 프로이트였다. 절대 이성을 추구한 결과는 처참했다. 인간의 절대 이성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인종학살을 자행하며 인간을 동물보다 더 파괴적이고 위험한 존재로 만들었다. 인간은 근대의 절대 이성을 부정하게 되었고, 그렇게 인류는 탈근대 사회로 진입했다.

탈근대, 즉 절대 이성을 추구했던 근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근대와 대비해 현대를 소위 탈영웅주의 시대라고 일컫는다. 그렇다고 현대에 영웅주의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현대가 전근대와 근대, 그리고 탈근대가 모두 공존하는 사회이듯, 탈영웅주의 시대에도 여전히 영웅주의가 혼재되어 있다. 탈영웅주의 시대에서는 더이상 우월한 개인에게 열등한 개인이 동화되지 않는다. 그저 시민 개개인이 모두 영웅일뿐이다.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치권력도 그러한 시대적 변화를 자각하지 못한다면 박근혜 꼴이 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박근혜 탄핵은 탈영웅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사건으로 볼 수도 있겠다. 박근혜는 탈영웅주의 시대에 영웅주의적 대통령으로 군림하다가 탄핵되었다. 탈영웅주의 시대엔 n에게 선출되어 n을 대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자신이 그저 1/n임을 알아야 한다. 한 개인의 생각이 집단의 생각보다 우월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개인의 주장이 집단의 주장보다 더 전략적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은 그저 1일 뿐이다. 하지만 자신이 그냥 1이 아니라는 영웅주의적 사고방식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좀비처럼 탈영웅주의 시대를 활보하고 있다. 탈영웅주의 외에 탈근대의 특징을 더 열거하자면 절대성의 해체, 개인의 등장, 불확실성의 가중, 당위의 역설, 가치의 상대성과 융합 등이 있다. 이는 저명한 누군가의 주장을 뒤섞어 표절한 것일 수도 있다. 이에 반하는 근대 사회의 특징은 아마도 영웅주의, 절대 이성의 추구,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 과학을 통한 불확실성의 증명, 절대적 가치를 통한 선악구도 등일 것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므로 다시 반복한다. ‘정책’으로써의 문화는 문화적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쓸모를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의 놀이터인 시대를 객관적으로 진단하는 것은 문화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시대에 대한 진단과 이해에 기초하지 않고 문화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주장하는 것은 권력화된 문화를 무기로 시대를 억압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2. 앨리트 문화에서 생활 문화로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분단을 고착시킨 3년 간의 6・25 전쟁을 치른 대한민국은 세계 무대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빠른 경제 성장을 필요로 했다. 그 내면에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국제 관계와 정치 환경이 존재하지만… 어쨌든 그랬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몇 백 년 동안 축적되어 왔던 자본주의적 경제 성장을 따라가기 위해선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경제 성장 논리인 선택과 집중은 경제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 문화적으로 확산되었다. 예술도 선택과 집중, 체육도 선택과 집증, 그리고 교육도 선택과 집중… 그렇게 단단하게 축적된 것이 바로 앨리트 문화다. 그것이 무엇이든 선택된 곳에 모든 것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선택받은 대상과 선택받지 못한 대상과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졌다. 경제 영역에서의 선택과 집중은 세계에서 유일한 족벌 기업인 재벌을 탄생시켰다. 재벌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없다. 재벌의 영어식 표현은 발음 그대로 ‘chaebol’이다. 예술, 그 중에서도 대중음악 분야의 앨리트 문화가 이끌어 낸 것이 바로 한류 열풍이다. 대한민국의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한류 열풍에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미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던 평창 동계 올림픽의 컬링을 기억하는가? 신드롬에서 한발 벗어나 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컬링 강국이라고 불리는 북유럽의 컬링 선수들은 대부분 컬링 선수가 직업이 아니다. 교사나, 의사나, 아니면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이 국가대표가 되어 올림픽 컬링 경기에 출전했다. 반면 대한민국의 컬링선수는 그냥 직업이 컬링 선수였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컬링팀을 울리고, 또 웃게했던 일본 대표팀의 스킵, 후지사와 사츠키 선수의 직업도 컬링 선수가 아닌 보험회사의 사무직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마 부족한 저변에서 대한민국이 빠르게 컬링 강국이 된 배경에는 생활 스포츠로 하는 컬링과 직업 스포츠로 하는 컬링의 차이도 한 몫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제, 문화, 체육, 나아가 앨리트 교육이 만든 폐해는 두 말 하기가 지칠 정도이다. 

대부분의 사회 문제는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만들어 낸다. “사회적 고통은 행동과 그 결과가 일치하지 않을 때, 다른 사람과의 격차가 커질 때 발생한다. 행한 바가 실제 사정과 일치하지 않으면 세상은 공정하지 못한 것이다. 재화와 행운이 부당하게 분배되면 세상은 더 이상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말하자면, 기대에 현실이 미치지 못하여 그 ‘간극’이 커질 때 문제가 생긴다. 간극에서 비롯한 불공정, 불만족, 부정의, 불평등은 고통을 참아내기 힘들게 만든다.[각주:2] 빠른 경제 성장의 필요성에 의해 편의적으로 시작된, 그리고 단단하게 축적된 앨리트 문화가 만들어 놓은 모든 영역에서의 양극화는 장차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을 한 방에 날려 버릴 수도 있는 가장 강력한 뇌관이 될 수도 있다.

앨리트 문화를 대표하는 전략인 ‘선택과 집중’은 폐기된 IMF의 경제 성장 전략인 Trickle-down, 즉 낙수효과와 다르지 않다.[각주:3] 선택하는 순간 누군가는 배제되고, 집중하는 순간 선택과 배제 사이의 양극화가 시작된다. 물론 선택과 집중이 절실하게 필요하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열마리의 토끼를 쫓다가 한마리도 못 잡으면 굶어 죽어야 하는 시대가 아니다. 토끼를 쫓는 대신 라면을 끓여 먹거나 햄버거를 사 먹으면 된다. 그런데 여전히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누군가는 선택과 집중을 목놓아 부르짖는다. 경제와 예술, 체육과 교육은 모두 문화의 범주 안에 존재한다. 앨리트 문화에서 전면적인 생활 문화 운동으로 전환해야 하는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3. 소비주도 문화에서 소득주도 문화로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경제 정책은 소득주도 성장이다. 우리의 빈약한 상상력은 가끔 소득주도 성장을 섣부르게 ‘수당’과 연결시킨다. 아마도 소득주도 성장이 2017년 핀란드에서 최초로 시작한 기본소득제도와 비슷한 맥락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이전에 ‘왜’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핀란드는 왜 기본소득 실험을 시작했고, 문재인 정부는 왜 소득주도 성장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지금까지 우리가 소득이 아닌 소비가 주도하는 경제성장 정책을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성장하려면 절약이 아닌 소비가 미덕이 되어야 한다. 중복적으로 소비하고 과하게 소비해야 과잉생산의 모순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 공황을 막을 수 있다. 중복 소비를 부추기는 대표적인 소비 문화가 바로 유행이다. 유행에 따라 우리는 멀쩡한 옷과 신발을 두고 새로운 옷과 신발을 소비한다. 자본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과잉된 소비 문화의 최대 적은 공동체 문화다. 과잉 소비를 조장하기 위해선 공동체가 유지되어선 곤란하다. 한 번을 쓰고 버리더라도 이웃에게 빌리지 않고 내가 사서, 내가 쓰고 버려야 한다. 이러한 것이 지금까지 경제 성장을 이끈 소위 소비주도 성장이다. 

소비주도 성장이 만들어 낸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는 일자리 경쟁과 부의 양극화다. 사회가 요구하는 소비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선 많은 소득이 필요하다. 보다 많은 소득을 올리기 위해서 지속 가능하면서도 많은 임금을 주는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일자리의 파이는 이미 정해져 있다. 이쯤 되면 경제의 성장이 나의 행복과 과연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의심해 볼만도 하다. 하정우가 주연한 영화 ‘더 테러 라이브’에서 테러범이 마포대교를 폭파한 이유는 경제 성장이 공정한 분배로 이어지지 않고 양극화를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20년 전에 마포대교 건설 노동자였다고 밝힌 테러범은 G20 정상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여전히 마포대교 보수 공사에 투입되었다며 누구를 위한 경제 성장인지 묻는다. 

소득주도 성장은 단지 수당의 지급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주도 성장으로 인해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하고, 소비주도 성장의 반대편에 있는 모든 것을 문화적으로 상상하는 것이다. 공동체 확대를 통해 소비로 인해 해체된 관계를 복원하고 관계를 통해 중복 소비와 과잉 소비를 막아 소비의 기대를 낮출 수 있다면, 이는 곧 소득이 증가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양극화로 인한 사회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소비 ‘기대’와 소득 ‘현실’ 간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소비주도 문화에서 소득주도 문화로 바꾸는 것은 정책적으로 문화에게 주어진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우리나라와 소위 선진국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중산층은 ①부채 없이 아파트 30평 이상을 소유하고, ②월급 500만원 이상을 받으며, ③2000cc급 중형 자동차와 ④1억원 이상의 예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⑤해외여행을 연 1회 이상 나갈 수 있는 계층을 말한다. 반면 프랑스의 조르주 퐁피두 전 대통령은 1969년 공약집에 담았던 ‘삶의 질’에서 ①외국어 하나 이상 가능하고, ②스포츠를 하나 이상 즐기며 ③악기를 다룰 줄 알고 ④남들과 다른 맛의 요리를 만들 줄 알고 ⑤‘공분’에 의연히 동참할 줄 알고 ⑥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을 중산층의 기준으로 제시했다. 미국의 공립학교에서도 중산층은 ①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②사회적 약자를 도우며 ③부정과 불법에 저항하고 ④정기적으로 받아 보는 비평지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각주:4] 한국의 중산층 개념이 주로 물질적인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선진국의 중산층 개념은 지극히 ‘문화’적이다. 

좋은 일자리의 개념도 중산층의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소비가 주도하는 경제 성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문화적으로 고착된 좋은 일자리는 지속가능하면서도 남들보다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이다. 이른바 일자리를 중심으로한 제로썸 게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나의 일자리가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나쁜 일자리이다. 개인적으로 좋은 일자리는 개인 뿐만 아니라 사회를 더욱 행복하게 만드는 일자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산층의 개념과 더불어 진정한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펴려면 좋은 일자리의 개념도 문화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4. 小結 : 민선 7기 문화정책의 방향은 문화 거버넌스

민선 7기 은평구청장으로 당선된 김미경 구청장은 취임사에서 협치에 기반한 소통행정, 시민의 성장을 지원하는 상생행정, 그리고 행정의 칸막이를 허무는 융합행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그대로 문화에 적용시키면, 협치에 기반한 문화, 시민의 성장을 지원하는 문화, 칸막이를 허무는 융합의 문화로 치환할 수 있다. 급조한 말이지만 크게 어색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 중에서 민선 7기 문화정책의 방향과 관련하여 협치에 기반한 문화, 즉 문화 거버넌스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거버넌스에 대한 오해와 진실

우리는 흔히 거버넌스를 ‘협치’라고 부른다. 다스릴 ‘치’가 들어가며 협력과 보완의 원리인 거버넌스에 권력이 개입한 것 같은 뉘앙스가 느껴진다. 행정은 행정의 입맛대로, 행정을 비판, 견재해 온 시민사회 또한 평소에 생각했던 강한 소신을 얹어 거버넌스를 ‘이용’한다. 서울시교육청에서 혁신교육지구 업무를 담당하며 교육 거버넌스에 관여한 적이 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거버넌스의 선행 연구에 대해 훑어본 적이 있다. 그 중 일부를 문화 거버넌스를 제안하기 위한 근거로 끌고 왔다.

 자본주의는 매우 유연한 경제체제이다. 18세기 산업혁명을 통해 촉발된 자본주의는 그동안 내적 모순과 외적 공격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그 위기를 극복해 왔다. 자본주의를 비판한 맑스는 일찍이 자본론을 통해 “자본가가 이윤을 증가시키기 위해 도입하는 각종 기술혁신이 상품들에 대한 ‘유효수요’를 초과할 정도로 너무 많은 상품을 생산하게 되어 ‘과잉생산’ 공황이 주기적으로 폭발”[각주:5]한다고 예견했다. 맑스의 예견은 적중했다. 1929년 뉴욕 증시가 대폭락하며 전세계 경제를 혼란에 빠뜨린 세계 경제대공황이 닥쳤다. 서구사회는 자본주의의 이러한 위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대처한다. 

대공황을 극복하고자 했던 독일의 극단적인 해결 방식은 주지하다시피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며 실패로 돌아갔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자본주의 수정을 통해 극복하려 했던 미국과 자본주의 부정을 통해 극복하려 했던 소련의 군사적 대립은 1991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선언이 있기까지 5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동서냉전이라는 자극적 대립으로 인해 비록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였으나 연구자는 거버넌스의 관점에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진행되었던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실험으로 스웨덴의 ‘노사대타협’을 더하고자 한다.


1930년대 당시 스웨덴은 세계대공황의 여파로 국내총생산이 대폭 줄어들고 실업률이 급증했으며(1931∼1932년의 경우 GDP -6.2%, 실업률 25%), 대규모 농민봉기(Ådalen 사건, 1931년)를 막는 과정에서 정부군의 발포로 5명이 사망하는 등 사회적 혼란이 가속되는 상황이었다. 1933년 건설노조의 장기 파업으로 큰 어려움을 겪은 후 스웨덴은 노사정이 함께 참여하는 위원회를 통해 수년간의 협상을 계속하였고, 수차례의 협상 결렬 위기를 넘기면서 마침내 노동시장위원회, 임금협상, 노동자 해고, 노동쟁의 등 4개 조항을 담은 협상문에 양쪽 대표가 최종 서명했다.[각주:6]


스웨덴의 노사대타협을 거버넌스와 연결시키는 이유는 스웨덴의 노사대타협이 1980년대 국가 정책 실패의 대안으로 제시된 거버넌스가 가지고 있는 유사성 때문이다.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국가 정책은 보이지 않는 시장의 손에 정책을 맡겼던 시장 실패의 결과였다. 시장도 실패하고 시장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되었던 국가 정책도 실패로 돌아가자 시장 속에서 자유롭게 성장한 민과 제도를 바탕으로 국가 정책을 집행해 왔던 관이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바로 거버넌스가 등장하게된 배경이다. 이는 초기 자본주의 시절 서로 다른 정체성으로 대립했던 자본가와 노동자가 대공황이라는 경제적 재앙을 극복하기 위해 협력했던 스웨덴 노사대타협과 묘하게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염재호는 거버넌스 이전에 국가가 시장에 개입한 배경에 대해 “제1차 세계 대전과 러시아 혁명, 세계 대공황, 제2차 세계 대전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시장 중심의 자유주의 질서는 붕괴되었으며, 소위 시장 실패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강조되기 시작했다"[각주:7]고 설명한다. “그러나 지나친 정부개입에 따른 부정적 결과와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의 결과들에 대한 민심의 이반 현상은 정부와 시장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을 요구하게 되었고, 특히 1970년대 이후 급변하는 환경 하에서 정부실패가 확산되자 규제완화, 민영화, 인력감축의 필요성 등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 정부주도의 공공서비스 전달 방식은 한계에 직면하게 됨으로써 이를 보완할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 거버넌스 이론”[각주:8]이라는 것이다.

거버넌스가 시장의 실패와 국가 정책의 실패를 경험한 후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정체성으로 운영되었던 시장의 논리와 국가 정책이 만난 결과인 것과 유사하게,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을 떠돌며 첨예하게 계급투쟁을 선동하던 시대에 투쟁의 당사자였던 스웨덴의 노동자와 자본가는 세계대공황이라고 하는 더 큰 위협에 맞서기 위해 서로의 손을 잡았다. 스웨덴의 노사대타협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군사적으로 대립하는 냉전체제에서 비껴나 북유럽이 복지국가로 성장하는 중요한 단초가 되었다. 연구자는 스웨덴의 노사대타협을 노동자와 자본가가 협력한 최초의 거버넌스 사례로 보고자 한다. 

거버넌스의 등장 배경으로 국가정책의 실패 외에 스웨덴의 노사대타협 사례에 주목하고, 나아가 최초의 거버넌스 사례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국가정책 실패의 대안으로 시작된 거버넌스가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 국가들의 복지국가 모델에서 착안되었을 가능성 때문이다. 


문화 거버넌스를 위한 제언

거버넌스는 시장에 주도권을 맡겼던 시장의 실패와 국가가 시장을 통제하려고 했던 국가정책의 실패로 인해 시작되었다. 도덕적 통제가 불가능한 시장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온갖 제도로 발목이 잡혀있는 국가 기관의 장점이 만나 서로의 단점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거버넌스이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갈등이다. 거버넌스란 주도를 배제한 다양한 주체의 수평적 연대와 협력이며, 갈등의 플랫폼 위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합의하고, 합의하지 못한 부분은 인정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민선7기 문화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기본 원리로서 추진하는 문화 거버넌스에 세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 번째, 거버넌스에서 주도를 걷어내야 한다.

한국사회의 거버넌스는 아직도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보다 ‘누가 주도하느냐’에 더 묵직한 방점이 찍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버넌스는 특정 주체가 주도하는 것도, 우월한 가치가 열등한 가치를 대체하는 것도 아니다. 주도와 대체 논리는 인류가 극대를 거치며 익숙해진 프레임이다. 과정 위에 놓여 있는 거버넌스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거버넌스에 참여하고 있는 주체들이 해야 할 첫 번째는 거버넌스에서 ‘주도’라는 개념을 걷어내는 것이다. 


두 번째, 상수가 아닌 변수를 조작해야 한다. 

민과 관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상수’가 있다. 상수는 각 주체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으며 쉽게 변할 수 없는 것이다. 민의 상수가 ‘가치’라면, 관이 가지고 있는 상수는 ‘제도’일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상수를 둘러싸고 있는 변수가 있다. 민은 가치를 둘러싸고 있는 ‘자존감’, 관은 제도의 ‘해석’이 상수를 둘러싸고 있는 변수이다. 각각의 변수는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각각의 상수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친다. 시대적 과제인 가치를 망각한 자존감은 오히려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다. 만약 관이 오로지 자신의 편의를 위해 제도를 해석한다면 시민들에게 공적 업무를 위임받은 존재 이유가 사라질 것이다. 거버넌스는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상수를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상수를 둘러싸고 있는 변수와 변수가 만나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들이 경험이 되어, 축적되다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변화가 불가능해 보였던 각자의 상수도 비로소 애초에 그 상수가 시작되었던 의미를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세 번째, 현재가 아닌 미래를 합의해야 한다.

현실에서 답을 찾을 수 없을 땐, 질문을 바꿔보라는 말이 있다. 만약 질문을 바꾸어도 답을 찾을 수 없다면, 그 답은 현재가 아닌 미래에 있을지 모른다. 미래의 답은 현실의 ‘합의’된 상상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작은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비록 합의할 수 없더라도 상대방이 처한 현실과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합의’의 필요조건인 ‘인정’과, ‘인정’의 충분조건인 ‘합의’가 만나야 거버넌스의 필요충분조건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우리가 거버넌스를 하는 이유는 현실의 문제와 현실의 이해관계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거버넌스는 구조화된 사회문제(주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문제와 관련이 있는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주체), 각 주체들이 서로에 대한 인정을 바탕으로 수평적으로 협력하여(작동 방식) 사회문제가 해결 된 미래를 상상하고 합의하는 것이다. 


글의 처음을 문화의 분화와 전문성으로 시작했다. 사회체계 이론의 대가인 '니클라스 루만'은 모든 사회적 체계들은 사회의 필요성에 의해 출발하지만 종국에는 자신의 확대, 재생산에만 몰입한다고 말한 바 있다. 작금의 다양한 체계들이 작동하는 모양새를 보고 있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치는, 경제는, 교육은, 문화는 현재 이 사회를 위해 작동하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체계 속에 갇혀 자신의 확대, 재생산에만 몰입하고 있는가? 문화 거버넌스는 전문성으로 분화 된 문화의 내적 거버넌스일 수도 있고, 인류의 지적 자산을 포괄하는 문화가 자신의 확대, 재생산에만 몰입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 체계들 사이에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역할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방향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익숙함에만 빠져 있는 것은 혁신이 아니다. 자식을 품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인류가 고단하게 발전시켜 온 모든 체계들을 품어 안는 것이 문화 거버넌스가 지향해야 할 방향 아닐까? 품어야 할 대상이 나에게 익숙하지 않고, 나의 신념에 반하더라도 말이다.

@Back2Analog


  1. 다음 한국어 사전에서 찾아본 문화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①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해 습득, 공유, 전달이 되는 행동 양식 ② 높은 교양과 깊은 지식 또는 세련된 아름다움이나 우아함, 예술풍의 요소 따위와 관계된 일체의 생활 양식 ③ 현대적 편리성을 갖춘 생활 양식의 총체 ①과 ③에서 말하는 문화의 개념은 지나치게 넓고 애매하다. ②에서 말한 ‘높은 교양’과 ‘세련된 아름다움이나 우아함’도 필자가 말하려고 하는 문화와는 거리가 있다. 본고에서는 문화를 ‘예술풍의 요소 따위와 관계된 생활 양식’ 정도로 좁혀서 보고자 한다. [본문으로]
  2. 전상진. 2014. 『음모론의 시대』. 문학과지성사. p.20. [본문으로]
  3. 이영창 기자. 2015. ”富의 낙수효과 없다… 저소득층 소득 늘어야 성장”. 『한국일보』. (6/16). [본문으로]
  4. 고철수. 2015. “중산층, 프랑스·미국·한국 기준 따져보니…”. 『한겨레신문』. (10/13). [본문으로]
  5. 김수행. 2014. 『자본론 공부』. 돌베개. [본문으로]
  6. 김정성. 2014. “스웨덴식 노사문화의 출발점, 살트셰바덴 협약.” 󰡔코트라 해외시장 뉴스󰡕 (6/17). [본문으로]
  7. 염재호·김영대·권효진. 2007. “정책 환경 변화에 따른 정부역할/재정역할 재정립”. 『한국정치학회』, 5. [본문으로]
  8. 염재호·김영대·권효진. 2007. “정책 환경 변화에 따른 정부역할/재정역할 재정립”. 『한국정치학회』, 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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