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유치원 비리 문제에 대한 지적과 그 해결...

책임의 전가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다.​

박용진 의원 발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가 뜨겁게 대한민국을 달구고 있다. 국회의원의 역할은 무엇인가? 물론 시민의 입장에서 이 사회의 잘못된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박용진 의원한테 딱 거기까지는 훌륭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그렇다면 국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시민이 뽑은 국회의원이 ‘지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문제의 ‘지적’과 책임의 ‘전가’는 있었지만 진정한 의미의 ‘해결’은 존재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문제를 ‘지적’하고 누군가는 그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식 문제 해결 방식이었다. 늘 그래왔으니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는 책임의 전가를 문제의 해결로 인식할 것이다. 매우 근대적인 방식이다. 적과 아를 나누어 적의 약점을 공격해 상처를 내고, 적도 아도 아닌 이들 앞에 상처난 적을 던져주고 물어 뜯게 하는 방식… 교육이 우리의 아이들을 1등과 꼴등으로 변별하듯 근대주의적 진보는 우리 사회를 그저 적과 아로만 구분한다. 서로 다른 역할로 존재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아’는 누구이고 ‘적’은 또 누구일까?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마이클 토마스키’는 ‘에릭 리우’와 ‘닉 하나우어’의 책 “민주주의의 정원” 추천사에서 “리가 정치적 문제에 대해 생각할 때 활용하는 바로 그 ‘구분’이 우리의 이해와 해결책을 어떻게 ‘방해’하는지 확실히 알려준다.”고 말한 바 있다. ​​


제 해결을 위하여…
육은 국가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그 의무와 책임을 사적 영역에 전가시켜 왔다. 어쩔 수 없었음을 인정한다. 해방 이후, 그리고 6・25 전쟁 이후 국가는 그 의무와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여력이 없었는지 의지가 없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교육 선진국이라 불리는 대부분의 북유럽 국가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바로 학교 무상급식을 했으니 의지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국가가 교육에 대한 여력도 의지도 없었기에 그 의무와 책임을 선한 의도를 가진 유지, 기업, 그리고 외국의 선교사들이 대신 져 왔다.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고 했던가? 그러나 국가의 미래를 위해 교육의 의무와 책임을 대신 지려 했던 유지, 기업, 선교사들의 선한 의도는 3대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교육 문제의 핵심이다. 먹고 살만해 졌으면 마땅히 국가가 사적 영역의 선의에 의지했던 교육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가져 왔어야 했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통틀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교육열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이미 꽤 이문이 많이 남는 ‘장사’가 되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해서도 안되는... ​​이제 문제의 지적에 대한 책임의 전가가 아니라 그 해결의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


째, 국가가 공적 의무인 교육을 사적 영역에 의지한 의무와 책임을 다시 가져 와야 한다.
난 수능개편안처럼 이해 당사자들끼리 절충하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교육이 가지고 있는 제도의 문제, 문화적 문제,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눈 앞에 둔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섣부른 절충의 결과를 공표하기 보다 본질적 문제를 진단하고 공유하기 위한 공론화에 힘 써야 한다. 책임의 전가만이 능사는 아니며, 가장 큰 책임은 비리를 저지른 사립 유치원이 아니라 그러한 교육 시스템을 방치한 국가가 져야 한다.​장기적으로 교육의 공공성을 OECD 국가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을 수립해야 하고, 어쨌거나 국가의 무관심으로 인해 그 책임을 떠 맡아온 사적 영역에 나름의 감사를 표해야 한다. ​


째, 비리의 공개가 문제를 해결해 줄까?
문제는 매우 조심스러운 문제이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놀지 않는다. 하지만 대중들은 고기를 관상하기 위해 그저 물이 맑기만을 바란다. 역설적으로 물을 맑아지고 나면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그 어떤 고기도 보지 못할 것이다. 부모는 비리를 저지른 유치원에 아이를 보낼 수 있겠는가? 그러면 국가는 그 아이들을 받아줄 시스템이 있기는 한가? 무책임한 지적과 책임의 전가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가?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과 공개는 분리되어야 한다. 그것이 문명국가에서의 문제 해결 방식이다. 사립유치원이 비리를 저질렀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립유치원이 악마나 마녀는 아니다. 국가가 하지 못한 교육의 영역에 대한 그동안의 기여, 마땅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앞으로의 역할 모두를 비리로 덮어 마녀로 내 몰기에는 우리 사회의 교육 시스템이나 철학이 지나치게 빈약하다. 한마디로 문제의 지적과 책임의 전가 이후의 대안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교육에 대한 과도한 숭배로 인해 늘 교육은 경멸의 대상이 된다. 교육에 대한 숭배는 우리나라 교육 종사자들로 하여금 모종의 책임감과 자부심을 부여해 했다. 그래서 교육 종사자들의 모든 행위는 그 과도한 책임감과 자부심에 종속된 행위가 된다. 외부의 시선과 무관하게 그 모든 행위는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저지른 교육 행위이다. 이건 비리의 문제라기 보다는 교육의 전문성이 시대의 요구와 분화되어 다른 상식의 기반 위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비리를 저지른 사립유치원뿐만 아니라 모든 교육 영역, 아니 사회 영역으로도 확장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다른 사람의 불행 위에서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경쟁 교육에 의심없이 동의해 왔다. 장차 승자는 폐허 위에서, 패자는 폐허 속에서 모두 불행해지는 것이 대한민국의 교육이 될 것이다. 오죽하면 헬조선인가!​


​셋째,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중장기적 시스템 정비
러난 상처를 물어 뜯어 아예 숨통을 끊는 것보다 사회가 함께 그 문제를 치유하는 쪽으로 걷는 것이 어떨까? 비리를 저지른 유치원은 전시의 적이 아니며, 어찌 보면 다소 다른 전문성에 갇혀 있는 대한민국의 시민이고, 이웃이다. 우리는 신이 아니다. 신이 아닌 인간이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기준과 잣대를 들이대며 이리저리 찢어 발긴다면 교육뿐만 아니라 이 사회 전체가 폐허가 된다. 사립 유치원만 비리를 저지른 것은 아닐 것이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국가가, 자신의 행복에만 빠져 있는 우리가 목적 없이 바쁜 일상을 살아내는 동안 누군가는 그래도 우리의 아이들 곁을 지켜 주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비리를 빌미로 마녀로 내 모는 것은 적어도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있는 국가가 할 일은 아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모든 언론은 그 책임을 세월호의 비정규직 선장에게 전가했다. (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 막는 인재(人災)의 나라, 대한민국... 링크 클릭) 우리 사회는 그 비정규직 선장에게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요구했다. 그 당시 난 우리 사회가 언제 비정규직에게 인간 대접을 해 준 적이 있었는지 물었다. 언제 국가가, 마을이, 우리가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교육에 대해 관심이나 있었는가? 그저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교육을 이용해오지 않았는가! ​​


글이 기니 세 줄로 요약 하겠다. ​

1.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를 계기로 교육의 공적 역할과 그 역할을 사적 영역에 방치해 온 국가의 책임을 인정할 것!​

2. 비리 공개로 인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책임의 전가가 아닌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 대책을 마련할 것!​

3. 교육의 본질적 문제 해결을 위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상호 협력하여 해결할 수 있는 미래교육 중장기 비전을 수립할 것!​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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