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의 밥그릇...

전문가들의 밥그릇 지키기에 시민들은 대체로 무지하거나 무관심하다. 만약 시민이 상식에 기초해 전문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대부분의 전문가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라며 선을 긋는다. 그 전문성의 분야가 ‘교육’이든, 정치든, 경제든…

“교육체계의 자기서술, 즉 교육의 성찰이론인 교육학에게 교육은 ‘모든’ 것이다. 교육의 오로지 교육의 관점에서, 경제는 오로지 시장의 관점, 정치는 오로지 정치의 관점에서 다른 체계(전문성?)들을 살핀다. 예컨대 정치 체계가 ‘민주시민을 충분히 양성하지 못했다.’고, 경제 체계가 ‘기업이 요구하는 소양을 충분히 양성하지 못했다.’고 교육을 비난할 때 교육 체계의 답변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교육은 비교육적 잣대로 교육을 재단하지 말라고 요구한다(전상진•김무경, 사회학의 위기에 대처하는 두 가지 방법, 2010).”


애초에 전문성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비롯되었을까? 시민의 상식을 대변하고, 시대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시작된 소위 전문성이 이제는 본말이 전도되어 시민의 상식과 시대정신과는 무관하게 전문성이 만들어준 밥그릇만을 향하고 있다.
사실 전문가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하는 밥그릇의 내용물은 시민들이 채워주고, 시대정신이 그 질을 결정한다. 교육이 전문성을 유지하려면, 시민들이 교육의 역할과 쓸모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정치의 필요성을 인정한 시민들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겨자를 먹는 심정으로 투표소로 향한다. 경제의 전문성은 경제 성장에만 몰두해 그 결과가 초래한 양극화가 역설적으로 경제성장을 둔화시킨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지키고자 하는 밥그릇의 총량은 이 시대 시민들이 채울 수 있는 내용물의 총량을 훌쩍 넘어선지 오래다. 밥그릇을 지키려고 하는 행위가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탐욕과 연관되어 있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된다. 더 큰 문제는 자기 전문성에 갇혀 버린 전문가는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고자 하는 행위가 시대정신에 반할뿐만 아니라, 나아가 시민의 상식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아예 관심도 없다는 것…
전문성의 분화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충분한 크기의 파이가 필요했기 때문에 시작되었다. 만약 충분히 커진 파이가 인류를 생존의 문제로부터 벗어나게 했다면, 그 다음부터는 파이를 어떻게 분배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파이를 계속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순진한 의도’는 역설적으로 자신에게 전문성을 부여하고 인정해 준 시민과 시대의 상식에 반하는 ‘악한 결과’로 이어진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이 박힌 채 죽어가며 말했다. “주여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모릅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난 인간 예수를 존경하지만 신은 아니다. 그러니 악한 결과로 이어질 것이 뻔해 보이는 의도에 악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용서할 자신이 없다. 전문가는 자신이 전문성이 향하는 결과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전문성이 더이상 시대를 앞으로 전진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제 전문성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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