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가장 거대한 콘텐츠 플랫폼은?


단연 스마트폰이다.
내가 애플빠이긴 하지만, 솔직히 잡스빠는 아니다. (그게... 그건가?) 잡스는 인류에게 통제 불가능한 판도라의 상자를 던져주고 무책임하게 떠났다. 어쩌면 더이상 구질구질하게 관계에 매달리지 않아도 모든 걸 소비로 대체할 수 있는 말기 자본주의시대인 현재에 스마트폰은 판도라의 상자보다 더 치명적일지 모른다. 난 현재 TV를 통해 드라마를 소비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예전에 난 매 시기 적어도 하나의 드라마엔 심취해 있었다. 하나의 드라마가 종영되고 나면 그 드라마가 남겨놓은 세계관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이제 어떤 드라마를 볼까 가슴 설레며 고민했었다. 하지만 가장 최근에, 그것도 넷플릭스를 통해 다시보기로 완주한 드라마는 “슬기로운 깜방생활”이 고작이다. 신문이 포털의 링크를 기다리는 존재로 전락한 것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TV도 스마트폰을 통하지 않고서는 대중에게 전달되기 어려운 처지가 되어가고 있다.
가장 작으면서도 거대한 콘텐츠 플랫폼인 스마트폰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가장 거대하면서도 제한된 콘텐츠 플랫폼인 영화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궁상맞게 혼자서 영화관을 찾는 마니아도 존재하지만 여전히 영화는 연인끼리, 가족끼리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당연히 생각나는 팝콘과 콜라는 개인 메뉴가 존재하지 않는다. 혼자 극장에 가서 팝콘과 콜라를 따로 주문할 경우 2인 메뉴인 콤보에 준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극장에 1인을 위한 팝콘 메뉴가 등장하는 그 순간이 바로, 우리 사회에 공동체의 필요성이 소멸된 시기가 될 것이다. 어찌보면 자본의 논리가 고맙기도 하다. 1인 메뉴를 개발해 더이상의 공동체 해체를 유인하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우리는 그 어떤 전지전능함으로도 내일자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를 예측할 수 없는 제2의 암흑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빠른 시대 변화로 인해 그 어느때보다 불확실한 시기를 보내고 있으며, 미래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은 신의 변덕이 지배하던 중세에 비견될 정도다. 내가 매일 아침 만나는 우리 가족, 회사의 직원들, 그리고 친구들... 만약 내가 그들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그들과 백 마디의 말을 섞는 것 보다, 그들이 스마트폰으로 소비하고 있는 콘텐츠를 엿보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
현재 난 길고도 조잡한 이 글을 아파트 앞 평상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스마트폰으로 쓰고 있다. 내가 사유의 도구로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자신의 사유를 접어둔 채 마치 우주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는 스마트폰 속을 유영하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인류는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아니, 스마트폰은 인류가 누리고 있는 무엇을 더 대체해 나갈까?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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