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과 결과...

어찌 보면... 우리 사회의 모든 갈등은 과정과 결과가 서로 어긋나면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과정을 살펴보면 그 과정의 시간적, 필연적 축적물인 결과를 어느정도 납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군(악)대에 있을 때...
하루는 급하게 악보 사보를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지휘를 하는 교육계가 열이 받아 연주회 악보를 하루만에 모두 만들어 내라고 지시를 내린 것이다. 원래는 방위병에게 복사를 부탁하지만, 방위병은 이미 퇴근한 상태... 난 드럼 파트 쫄병(표준어는 후임병)들을 불러 대책을 논의 했다. 그 당시 내 쫄병은 3명이었고, 사실 바로 밑 쫄병만 똘똘했다면, 난 이 일에 관여하지 않아도 될 짬밥(=군에서의 위치?)이었다. 바로 밑 쫄병은 악보 사보에 재능(?)이 없어 신병 때부터 악보사보를 열외시켜 주었던 터라, 덕분에 파트 막내가 할 악보사보를 오랜 기간 내가 해 왔다. 내가 미쳤지... 애초부터 그냥 까라고 했어야 하는데...
암튼... 쫄병 3명, 그리고 내가 역할을 분담했다. 
해야할 악보사보가 10장이라면, 가장 막내가 4장, 그 위 쫄병에게 3장, 내가 2장, 그리고 형평성(?)을 위해 그 악보 사보에 재능이 없는 쫄병에게도 1장을 하라고 ‘부탁’했다. 
새벽 4시에 경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악보 사보에 재능이 없는 쫄병은 2시에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자고 있었다. 그냥 잘까? 하다가 혹시 몰라 자고 있는 쫄병에게 살짝 물었다. 
“ㅎㅈ아, 악보 사보 했어?”
그 쫄병은 눈을 말뚱멀뚱 뜨며 안했다고 답했다. 
...
고민을 했다. 바로 샤워장으로 끌고 가 두들겨 패고 싶은 동물적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내 잠은 다 달아나 있었다. ‘그래 일단 잠은 재우자.’ 난 혼자 샤워장에 가 모기랑 싸워가며 그 쫄병에게 맡긴 악보를 사보했다. 
다음날 아침... 아침 식사 후 난 그 후임병을 합주실 뒤로 불렀다. 더 정확한 군사용어는 사실 ‘집합 시키다’이지만 한 명이니 뭐...
난 고참인 내가 한 수고로움이 있으므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팼어야 했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난 먼저 이유를 물었다. 
“너, 내가 그렇게 우수워? 어제 분명히 악보 사보 하라고 얘기했잖아.”
“저도 하려고 했는데, 근무 같이 선 국영길 병장님이 안 해도 된다고 해서...”
국영길 병장은 트럼펫 파트 고참이다. 사실 핑계가 되지 않는다. 군대에서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직접 지시를 내린 내게 물어봤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팰 타이밍은 놓쳤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모든 결과는 주관적 이유와 그 주관적 이유가 축적된 과정의 산물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건 결과 뿐이고, 잘난 분업화와 전문화가 상식을 조각낸 현실 속에서 우리 모두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주관적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결론이다. 
밤 12시 반에 들어와 전화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하는 중3 딸에게 난 군대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거버넌스에 임하는 민과 관도 서로 자신이 겪어온 과정이 상대방에게는 그저 주관적 과정으로 인식될 수 있음을 인정할 순 없을까? 
참고로 악보사보에 재능이 없을뿐만 아니라 네가지로 밥을 말아드신 그 쫄병은... 제대 후 다른 고참에게는 게겨도 나한테만은 늘 깍듯하다.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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