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함을 감추는 훈련...

모두가 자신이 처한 삶에 절박함을 느낀다. 그 절박함에 평균 따위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내 손톱 밑에 가시가 박히지 않았으면 모르되, 모두의 손톱 밑에 ‘절박’이라는 가시가 박혀 있고, 모두 내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주는 통증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그 가시가 주는 통증은 모두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손톱 깊숙히, 어떤 사람은 손톱 끝에 가시가 살짝 걸쳐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이 상대적으로 느끼는 고통의 크기는 모두 100이다. 평균(고통의 절대적 수치?)적인 고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네 손에 박힌 가시는 나보다 안 아플 거 같은데? 내 손에 있는 가시 좀 먼저 빼 주면 안될까?”

여기에 보이지 않는 권력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해 보다. 진짜 아픈 건 사회적 약자... 그 중에서도 그 고통에 미처 익숙해지지 않은 아이들일텐데... 어른들이 자신들의 손톱 밑에 박힌 가시 때문에 아이들의 손톱 밑에 박힌 가시를 모른 체 한다면? 그 가시는 손톱 밑을 뚫고 아이들의 심장을 겨눌지도 모른다. 

절박함을 단지 하소연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절박함에서 한발짝이라도 벗어나고 싶다면... 절박함을 감추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손톱 밑에 박힌 가시부터 빼 준다면, 그 사람도 내 손톱 밑에 있는 가시를 빼 주기 위해 노력할지 모른다. 만약 내 절박함을 감추는 것에 동의한다면... 가장 먼저 내 주위에 있는 가장 약한 이의 손톱 밑을 보아주기 바란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난 고통으로 인해 잠 못 이루고 있는 딸의 손톱 밑을 살피러 갈 것이다. 차라리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눈에 보이는 상처라면 좋으련만... ㅠㅠ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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