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넌스의 반대말은?

한때 모든 개념의 반대말을 찾아 헤매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의 반대말은? 아빠!
근데 엄마와 아빠가 진짜 반대말일까?
진실의 반대말은? 거짓!
음... 철학적으로 얼마든지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
증오는 오히려 사랑과 가장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사랑을 해 본 이라면 알리라!

오늘은 갑자기, 불현듯, 느닷없이 거버넌스의 반대말이 뭘까 궁금해졌다.
엉뚱하게 거버넌스의 반대말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킨 이는 요즘 나의 스승 노릇을 톡톡이 하고 있는 우리 딸이다.

아침에 학교도 안가고 밍기적거리는 딸을 보며, 나의 잘난 딸은 선풍기 바람을 쐬며 한가하게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뭐 이런 일이 처음이라면 울화통이 터졌겠지만... 이제는 웃어 넘길 수 있다.
나야 남은 시간이 길어야 50년 남짓이지만, 우리 딸에겐 그 두 배의 시간이 남아 있다.
나도 처음엔 이랬다.
“머리 안 말리고 핸드폰 보고 있는 거야?, 학교 안 가?”
스마트폰의 통제에 실패한 건 은기가 아니라 아빠인 나다. 오히려 은기는 기나긴 투쟁을 통해 적어도 스마트폰에 관한 한 아빠의 통제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났다.
또한 은기가 학교를 가기 싫어하는 이유는 학교가 스마트폰의 유혹을 이길만큼의 매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디 그 뿐이랴! 아이들은 안다. 고통스런 청소년기를 보내도 자신에게 행복한 청년기가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절망의 나라에서 행복한 젊은이들”의 저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일본 초,중,고 생의 행복 만족도가 90.5%에 이르는 이유는 그들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의 책임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기성세대들은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사회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다. 그 자신도 그러한 사회 안에서 작은 기득권을 지키며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러한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의 모든 책임을 아무 힘 없는 아이들에게 전가한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부모와 자식 간에는 권력이 존재한다. 자식이 부모의 가치나 취향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 위해선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논리 비약을 하자면... 그래서 부모와 자식 간엔 거버넌스가 쉽지 않다. 벗어날 수 없는 권력관계에 놓여 있으므로...
즉, 거버넌스의 반대말은 권력이다.
만약 내가 딸과 거버넌스를 하려고 한다면... 아빠가 가진 권력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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