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소녀"를 보며 이정희를 생각하다.

며칠 전, 은기와 “안녕, 나의 소녀”를 봤다. 여주는 대만의 대표적인 청춘물, “나의 소녀시대”에서 린전신 역을 맡아 오글거리는 연기를 했던 송운화다. 내가 본 몇 안되는 영화 중, 빗 속에서 넘어진 채 따라오는 남자를 손을 뻗어 저지하는 장면을 능가하는 오글씬은 존재하지 않는다. ㅋ 

바로 이 장면! ㅋ

송운화는 “안녕, 나의 소녀”에서는 청순미를 살짝 벗어 던지고 춤 잘 추고, 노래 잘하는 스타 ‘은페이’로 분한다. 아무로 나미에가 전 세계를 휩쓸던 시절(1997년?) 일본의 한 기획사는 대만에서 유망주를 발굴하기 위해 오디션을 연다. 은페이는 당당하게 오디션에 뽑혀 일본으로 진출하지만, 1집을 낸 후 팬들에게 잊혀져 비운의 삶을 살다 38세의 나이에 요절한다. 은페이를 짝사랑하던 친구, 정샹(류이호 분)은 은페이의 장례식장에서 나와 신비로운 노파(?)로부터 세 송이의 꽃(목련?)을 산다.

“한 송이에 하룻밤”

알 수 없는 말을 남기는 노파... 정샹은 신비로움에 빠져 있다가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한다. 눈을 뜬 정샹은 자신이 20년 전인 1997년으로 되돌아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은페이의 불행이 오디션에 합격해 일본으로 진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정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은페이의 오디션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오디션 날짜가 연기되었다고 뻥을 치고, 자전거의 바람을 일부러 빼 스스로 다치는 등...

내가 "안녕, 나의 소녀"를 보며 든 생각은 두 가지다. 첫 번째, 주인공 송운화의 외모가 현재 비운에 빠져 있는 정치인 "이정희"를 닮았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 미래를 이미 알고 있는 정샹의 은페이에 대한 노력이 마치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내 모습과 오버랩 된다는 것. 먼저 이정희에 대해 얘기해 보자...

왼쪽 '이정희' 전 대통령 후보와 오른쪽 나의 소녀시대에 나왔던 '송운화'


이정희는 지난 2012년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대놓고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대통령 후보로 나왔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최초로 공중파에서 일본 장교 출신인 박정희의 본명(?)인 "다카키 마사오"를 또박또박 이야기하는 등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주었으나, 토론 도중 대한민국을 "남측 정부"라고 표현해 종북 몰이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주지하다시피 박근혜는 18대 대선에서 51.6%라는 악마의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이미 촛불 이전에 박근혜 치하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견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을 저지하려 했던 이정희는 진보와 보수를 포함한 국민 모두로부터 마녀 사냥을 당했다. 박근혜를 지지한 보수는 그렇다쳐도 이정희를 지지하거나, 그 또랑또랑한 사이다 발언에 열광했던 국민들은 왜 이정희를 마녀로 몰았을까? 우리 모두는 받아들이기 싫은 현실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전가할 누군가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비겁하게도 그 누군가로 가장 선두에서 박근혜와 싸운 이정희를 지목했다. 박근혜와 보수 우익뿐만 아니라, 언론도, 그리고 진보 진영마저도...

2017년 3월 10일, 박근혜는 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한 촛불 시민들에 의해 파면 당했다. 그리고 이명박근혜 시대를 보내며 마치 악마로 규정해 왔던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두 차례나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고, 곧 미국의 대통령과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솔직히 이정희의 근황을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이자, 며느리인, 그리고 나와 다르지 않은 한 인간인 이정희가 그동안 겪었을 고통에 대해서는 만약 마음만 먹을 수 있다면 짐작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늦었지만 진지하게 묻고 싶다. 2012년 대선 패배의 모든 책임이 이정희에게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신념을 목소리 높여 주장하고 있는 그대들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질 생각이 있기는 한가?

나의 소녀시대에서 린전신은 부정행위를 했다고 의심받는 친구를 위해 자신도 처벌해 달라고 용기있게 나선다.

두번째는 은페이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정샹의 태도를 보며 든 생각... 은페이는 왜 정샹이 자신의 오디션을 방해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은페이는 자신의 재능을 지지해 주었던 친구 정샹의 달라진 태도에 분노한다.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내 딸... 아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청소년들도 은페이처럼 마치 미래에서 온 것 같은 부모의 걱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포인트는 두 가지다. 정샹처럼 미래에서 온 것도 아니면서 자식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의 오지랖에 근거한 확신과, 정샹처럼 미래에서 오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더 많은 인생 경험 속에서 축적된 지혜에 대해 무조건적인 부정을 하고 있는 아이들의 오만... 탈근대를 움직일 수 있는 건 오로지 "당장의 적당한 합의"라고 주장해 왔던 나는 부모의 '확신'과 자녀들의 '오만' 사이에는 '당장'도, '적당함'도, 그리고 '합의'도 없음을 깨닫는다. 

부모들은 과거를 살아온 자신의 '확신'이 자녀들이 살 미래에는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할 수는 없을까? 그리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청소년들은 전부는 아니어도 부모가 제시하는 지혜가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여지'를 둘 수는 없는 것일까? 탈근대 시대의 모든 결과는 0과 1 사이의 소수점으로 존재하지만, 근대를 살아온 우리들은 그동안 0과 1, 참과 거짓만을 구별할 수 있는 훈련을 해 왔다. 거듭 말하거니와 탈근대를 사는 우리는 참과 거짓, 정답과 오답, 그리고 세상은 0과 1로 존재한다는 '확신'과 '오만'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오력"해야 한다.

@back2analog




Comments 4

  • 꼼지락 | 댓글주소 | 수정/삭제

    0과 1의 거리,
    참 멀어요.
    당사자이면 더욱~

  • Back2Analog | 댓글주소 | 수정/삭제

    페북 댓글에 대한 댓글... 북 치고, 장구 치고...
    댓글...
    왜 그녀를 떠올렸을까? 연상에 의한 무의식의 발현? 그가 대선후보가 아니었더라면 말에 대한 책임이 그렇게까지 크게 질 일은 아니었다고 본다. 정치인은 말이 모든 것이요 생명인데 남을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는 그 말은 과연 명분을 가질 수 있을까? 그대가 말하는 대중의 눈높이에서 보면 더 분명해진다. 그건 반장선거에서도 통하지 않는 언행이다. 조급함 혹은 미숙의 반영이었다고 솔직히 성찰하는 것이...

    댓글에 댓글...
    1. 그녀...라는 표현이 적절치는 않지만, 제가 글에서도 썼듯 이정희를 떠올린 건 순수하게 닮은 외모 때문이었습니다. 믿어주세요. ^^
    2. 말에 대한 책임은 누구나 져야 하지요. 물론 정치인이 한 말에 대한 무게가 더 큼은 인정합니다.
    3. 그걸 그렇게 대놓고 표현한 것은 저도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박근혜를 떨어뜨려야 한다는 생각은 그 당시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 가졌던 집단적인 신념이었습니다.
    4. 반장 선거와 비교를 하셨는데, 만약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같은 아이가 반장이 되겠다고 나선다면 비겁한 대중들은 누군가 저 아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서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5. 미루어 짐작컨데 교육장님께서 주관적인 신념이 강한 탓에... 제가 쓴 글의 논점을 살짝 벗어나신 것 같은데... 제가 쓴 글의 요지는 두 가지였구요. 그 중 첫번째가 많이 불편하셨나 봅니다.
    5-1. 전 사회의 구조적인 책임을 편하게 자기와 분리시켜 전가시키는 행위에 대해 지적을 하고 싶었구요.
    5-2. 그 당시 우리의 기대와 무관하게 구글 트렌즈의 검색 결과를 보면 선거기간 내내 한번도 문재인이 박근혜를 앞섰던 적이 없었습니다. 즉, 우리가 그 책임을 이정희에게 전가하고 싶은 것과 무관하게 이미 다양한 이유로 박근혜가 당선이 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선거였지요. 참고로 전 이번 대선에서도 구글 트렌즈를 통해 대선 득표율을 어느정도 예상했고, 노병갑 전 동작구청 교육정책보좌관과의 내기에서 당당히 10만원을 땄습니다. ㅎㅎ 트럼프를 선택한 미국인처럼, 그 당시 대한민국 국민은 이정희의 막말(?)과 무관하게 이미 박근혜를 선택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5-3. 전 그 이유 중에 소위 진보의 무능력과 무책임, 그리고 비겁함도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구조적인 결과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은 없으니까요.
    5-4.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 책임을 특정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여전히...
    5-5.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단지 인간이 조급함과 미숙함의 책임을 그렇게 비인간적으로 져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가 안되네요. ㅠㅠ

    많은 사람들이 나의 신념, 그리고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한 생존행위는 정당화하면서 자신과 신념이 다른 사람의 생존행위에는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요. 그래서 전 더 이상 큰 꿈을 안 꾸려구요. 그저 저와 제 가족의 행복이 이 사회의 구조적인 성장을 방해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

  • adeline | 댓글주소 | 수정/삭제

    이정희는 정치감각이 너무 없었다. 아깝다. 하지만 미련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