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넌스'라 쓰고 '투쟁'이라 읽는다?

혹자는 내가 주장이 강하며, 고집이 세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내 신념이 주관적이고, 상대적일뿐만 아니라 잘못되었을 수도 있음을 주장하며, 그 고집은 도저히 꺾을 수가 없다. 중세가 오만한 신의 시대였다면, 근대는 더 오만한 인간의 시대였다. 니체는 이야기했다. 신은 죽었다고... 신도 이야기했다. 니체도 죽었다고... 중세가 신이 통치한 암흑의 시대였다면, 근대는 인간이 통치한 학살의 시대였다.
인간의 오만이 인간을 학살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인간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달았다. (깨닫기는 했으되 아직 그 부족함을 인정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 그것이 바로 근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류의 몸부림이다. 그리고 절대이성과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은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라는 절대진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혹자는 가치와 도덕을 배제한 루만의 사회체계 이론을 보수적이라 비판한다. 사회학의 쓸모는 처방이 아닌 진단에 있다. 진단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이다. 만약 암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의사가 환자가 암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진단에 임한다면?
사회문제의 해결(=처방)은 도덕과 가치를 배제한 객관적 진단의 결과를 바탕으로 사회 구성원이 합의를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합의의 당사자들이 때로는 불리함을 감수해야 하는 합의로 나아가기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어쩌면 객관적으로 사회문제를 진단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아직도 신념의 오만에 빠져있는 근대주의자들이 좀비처럼 탈근대 사회를 활보하고 있다. 그들은 인간이 시장의 실패와 국가 정책의 실패를 겪은 후 탈근대적 겸손으로 자신의 단점을 상대방의 장점으로 ‘보완’하기 위해 시작된 거버넌스에 나의 신념으로 나와 독립적으로 존재해온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대체’하려는 투쟁의 관점으로 임한다. 대놓고 자신의 밥그릇을 내 놓으라고 만들어진 테이블에 앉을 바보는 없다. 자신의 신념에 그토록 자신이 있다면 근대적 방식으로 그 잘난 투쟁을 하면 된다.

 ​@back2analog

니체라고 합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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