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oo의 역설과 딜레마...

  하루가 지나면 새로운 사건이 하나씩 터진다. 안희정에 이어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앞둔 정봉주까지... 내일은 또 누가 포털의 실검 1위를 차지할까? 이쯤 되면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는 사람이 하나, 둘 나올 법도 한데, 아직은 없다. 아무리 미투 열풍이 불고 있다지만 여성 입장에서 자신이 당한 사실을 폭로하는 게 쉽지도 않거니와, 그 쉽지 않은 가능성에 설마라는 기대감을 걸고 있는 남성 입장에선 가해의 사실을 먼저 자백한다고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니 굳이 자수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 사회에서 성(性, sex, gender)은 유교적 관습이 오랫동안 단단하게 금줄을 쳐 왔던 영역이다. 아마도 미투 열풍이 몰고 올 파장의 크기와 길이는 유교가 대한민국 사회를 억압해 온 강도와 기간에 비례할 것이다. 미투를 단순히 스캔들 따위와 비교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을 수 있지만, 멀리 프랑스나, 심정적으로 가까운 미국만 하더라도 섹스 스캔들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다.  


  미투 열풍이 인류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 굳어진 가부장제라는 정(()에 반(反)하는 투쟁이라면, 근대를 넘어 탈근대로 향하고 있는 인류는 그 결과가 합(合)이 아닌 역설적으로 귀결되는 것에 대해 경계를 해야 한다. 이미 역설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허핑턴 코리아에서는 지난 3월 7일 "'펜스룰'은 또 다른 피해를 낳을 수 있다(기사 보기, 링크 클릭)"라는 기사를 통해 이른바 성추행 방지를 위해 마련된 '펜스룰'이 성평등에 역행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펜스룰 외에도 미투 열풍의 파장이 몰고 올 다양한 역설적 결과들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성평등이 아닌 성갈등의 확대다. 남성은 존재 그 자체로 여성들에게 죄인 취급을 당할 수 있다. 미투가 혐오로 나아간다면 그때는 문제의 대한 접근도, 문제 해결도 불가능해진다. 여우를 피하려다가 호랑이를 만나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미투 열풍이 장차 인간 해방이라는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기 위해 나는 다음의 두 가지를 제안해 본다.

  첫째, '미투'의 의미와 쓸모를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로 확장해야 한다. 

  현재 "미투"는 주로 과거에 있었던 잘못을 소환하는 의미로 쓰인다. "미투"의 의미가 과거에만 머문다면 운동으로써의 역동성은 곧 사라지거나 역설적 편향을 불러올 수도 있다. 지난 포스팅에서도 제안했듯이... (me too... 열풍인가, 광풍인가? 참조) 남성들이 넘지 말아야 할 성에 대한 선은 이제 여성이 여성의 관점에서 주도적으로 그어야 한다. 남성들이 만약 스물스물 그 선을 넘으려 한다면, 여성들은 "미투"를 외쳐 남성들에게 지금 선을 넘고 있음을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알려줘야 한다. 여기에서 외치는 "미투"는 "나도 당했다."는 과거에 대한 폭로가 아니라 "나도 당할 수 있다."는 의미로 현실과 미래에 대한 경고를 하는 것이다. 여성에게 당연하게 인식되는 것이 남성들에게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남성들이 오랜 가부장제 사회에 적응한 나머지 성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잘못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관계 문제에 미숙한 남성들이 이 문제를 스스로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지속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넘지 말아야 할 성에 대한 선을 여성들이 제시하고, 남성들은 여성들이 제시한 가이드 라인을 반복적으로 학습해야 한다.


  둘째, 미투를 지지하는 다양한 동참 운동이 뒤따라야 한다. (with you)

  미투 열풍은 이미 개인의 차원을 넘어섰다. 권력이 있는 곳이라면 영역을 가리지 않고 미투 열풍이 확산될 조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미투 운동에는 두 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첫째, 미투 운동이 아무리 사회로 확산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성의 문제는 개인의 영역이라는 점, 둘째, 대중들의 시선이 향하지 않는 일상적이고, 사소한 권력 사회에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미투를 외치기가 쉽지 않다는 점... 

미투 열풍이 "피해자의 폭로와 고발 - 무책임한(?) 사회적 분노 - 가해자의 법적 처벌 -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회적 생명 박탈"이라는 쳇바퀴에서 벗어나, 그 운동의 결과가 차별과 불평등의 해소라는 사회적 가치로 나아가기 위해선... 쉽지는 않겠지만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치유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 중 하나가 미투를 지지하는 다양한 동참 운동의 확산이라고 생각한다. 


  근대가 변증법과 당파성의 시대라면, 근대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포스트모던 사회는 역설과 복잡성의 시대이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필연의 결과라기 보다는 우연의 결과다. 다양한 필연들이 만나 만들어진 우연의 결과인 현실을 필연으로 조작하려 한다면 감당할 수 없는 역설적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다. 그 어떤 필연이 미래를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있단 말인가! 시대는 포스트모던으로 진입했지만, 시대를 진단하는 방식이나 처방하는 방식은 여전히 근대적이거나 전근대적이다. 파편적 문제의 해결은 사회성장으로 나아가지 않고,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하지만 사회가 성장한다면 그 과정에서 많은 파편적 문제들은 조금씩이라도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 

  아직까지 근대적 습성이 남아 있는 우리들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방법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연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빈약한 전략과 전술로 섣불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덤비는 것은 주판 하나를 들고 최첨단 컴퓨터와 연산 대결을 벌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하루'가 만들어 내는 정보의 양은 바로 그 전날까지 인류가 축적해 온 문명이라는 정보의 양에 필적한다. 나의 필연이 나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우연의 결과인 이 사회에 필연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오만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지의 발견이 서구의 과학 혁명을 가능하게 한 것처럼, 필연의 오만에서 벗어난 우연의 인정이 현실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중대한 전환점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동아시아를 향한 새 항로를 찾기 위해서 스페인을 떠나 서쪽으로 항해하기 시작한 1492년에 왔다. 콜럼버스는 여전히 과거의 ‘완전한’ 세계지도를 믿고 있었다. 그런 지도를 이용한 콜럼버스의 계산에 따르면, 일본은 스페인에서 7천 킬로미터 서쪽에 있어야 했다. 그러나 사실 동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거리는 2만 킬로미터가 넘으며, 중간에는 완전한 미지의 대륙이 가로막고 있었다.


  1492년 10월 12일 오전 2시쯤 콜럼버스 탐험대는 미지의 대륙과 맞닥뜨렸다. 핀타 호의 돛대에서 관측하던 후안 로드리게스 베르메호는 섬을 하나 발견하고는 외쳤다. “육지다! 육지다!” 오늘날 우리가 바하마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콜럼버스는 자신이 동아시아 연안의 작은 섬에 도달했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이 인도 제도에 — 오늘날 우리가 동인도 제도 혹은 인도네시아 군도라고 부르는 곳이다 — 상륙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발견한 사람들을 ‘인디언’이라고 불렀다. 콜럼버스는 평생 그렇게 오해했다. 완전히 새로운 대륙을 발견했다는 생각은 그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으며, 그의 세대의 많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위대한 사상가와 학자뿐 아니라 오류가 있을 수 없는 성경까지도 수천 년 동안 유럽과 아프리카와 아시아밖에 몰랐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틀렸을 수 있을까? 성경이 세계의 절반을 몰랐을 수 있을까? 이것은 마치 1969년 달을 향해 비행하던 아폴로 11호가 무슨 이유에선지 그때까지의 관측에서 전혀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달과 충돌했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였다. 무지를 인정하지 않은 콜럼버스는 여전히 중세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세계 전체를 안다고 확신했으며, 심지어 스스로 이룬 기념비적인 발견도 그 확신을 흔들지 못했다.


  최초의 근대인은 아메리고 베스푸치였다. 그는 1499년~1504년 사이에 여러 차례 아메리카 탐험대에 참가했던 이탈리아 선원이었다. 1502년부터 1504년 사이, 그 탐험의 내용을 담은 두 건의 문서가 유럽에서 출간되었다. 저자는 베스푸치로 되어 있었다. 이들 문서의 주장에 따르면, 콜럼버스가 새로 발견한 섬들은 동아시아 연안의 섬들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대륙이었다. 성경이나 고전 지리학자나 동시대 유럽인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1507년, 이런 주장을 확고하게 믿은 존경받는 지도 제작자 마르틴 발트제뮐러는 최신판 세계지도를 출간했는데, 그것은 유럽에서 서쪽으로 항해한 선단이 착륙했던 곳을 별개의 대륙으로 표시한 최초의 지도였다. 대륙을 그려 넣은 발트제뮐러는 이름을 부여해야 했다. 그는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아메리고 베스푸치라고 잘못 알고 있던 터라, 이 대륙에 아메리고를 기리는 이름을 붙였다. 아메리카라고. 발트제뮐러의 지도는 인기를 끌었고, 수많은 다른 지도 제작자들에 의해 복제되었다. 그가 새 땅에 부여한 이름도 함께 퍼져나갔다. 세계의 4분의 1에, 즉 일곱 대륙 중 두 곳에 거의 무명이던 이탈리아인의 이름이 붙은 것이다. 그가 유명할 이유라고는 “우리는 모른다”라고 말할 용기가 있었던 점 외에 아무것도 없다."

- 알라딘 eBook <사피엔스>, 무지의 발견 중


  무지를 인정했던 최초의 근대인이 아메리고 베스부치였듯, 우연을 인정하지 않고 필연만 주장하는 사람은 탈근대 사회를 살아가는 근대인이다. 필연의 결과로 보면 미투 운동의 가해자는 당연히 법적 처벌의 대상이고,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할 죄인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에 대해서는 한번쯤 "의심하고 주저해"[각주:1] 볼 필요가 있다. 근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인 맑스가 자본론 서문에서 밝혔듯, 개인은 그저 사회적 관계의 피조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back2analog



  1. "의심하고 주저하기"는 세대학자 전상진이 「세대 게임」에서 세대 프레임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제안한 개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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