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oo... 열풍인가, 광풍인가?

    이젠 말을 꺼내 놓는 것조차 무섭다.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로 시작된 미투 열풍이 일파만파가 되어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강타하고 있다. 이쯤 되면 미투의 무풍지대라는 것이 과연 있을까 싶다. 연예계에서 터진 미투는 그렇다 쳐도, 문단에 이어 그동안 지방선거를 앞두고 쉬쉬하던 정치계까지... 시작 자체도 태풍이었던 미투 열풍은 대한민국의 특수성과 결합해 토네이도 급으로 급성장하였다.

    미투와 만난 대한민국의 특수성... 첫째는 주지하다시피 유교와 결합한 강력한 가부장제이다. 둘째는 첫째의 결과가 만든 페미니즘의 급진성이다. 마지막으로 불행한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낳은 빈약한 갈등 관리 능력이다. (각각의 특수성에 대한 설명은 자칫 주제를 흐릴 수 있으므로 기회가 되면 다른 포스팅을 통해 부연하겠다.) 남성은 모두 짐승이 되었고, 이제 남성들은 노소를 불문하고 고개를 들어 여성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혹시 자각하지 못한 나의 잘못을 찾아 과거의 기억들을 조심스레 파헤치는 중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아마도 없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미투 열풍의 긍정성

    미투 열풍은 권력 관계를 중심으로 잔존해 있던 성차별을 과감하게 해체해 나가고 있다. 아니, 해체를 넘어 이미 뒤집었는지도 모른다. 누차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 밝혀 왔듯, 여성은 보다 이성적이고 진화한 인류다. 그 진화한 인류가 찌질한 남성들의 물리력이 필요해 그동안 가부장제를 허용해 왔다. 그런데... 동물적 본성을 여전히 장착하고 있는 남성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물리력의 쓸모가 다 한지도 모르고 여전히 가부장제가 만들어 온 유전적 기대감에 취해 여성에게 성적 폭력을 자행해 왔다.[각주:1] 사회 지도층이 되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물리력과 무관한 일이 되어 버렸다. 힘이 세다고 의사가 되고, 판, 검사가 되는 시대가 아니지 않은가! 미투 열풍의 진원지가 대한민국의 권력 최상부인 검찰 조직에서 시작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면서 아이러니하다. 

    검찰 조직은 누가 뭐래도 최고의 엘리트 조직이다. 그런데 최고의 엘리트 조직인 검찰 조직이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 수컷의 동물적 본성에 최적화된 전근대적 방식으로 작동되어 왔다. 그 아이러니함으로 인해 미투의 첫 번째 타깃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2009년, 남성 권력을 향해 목숨을 던진 故 장자연 씨는 그저 바위에 던져진 계란일 뿐이었을지 모른다. 성폭행 피해자에게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각주:2]를 묻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만약 미투의 시작이 또다시 연예계였다면 안타까운 피해자만 더해지지 않았을까?

    차별과 불평등은 인류가 오랫동안 투쟁해 온 과제이다. 18세기 부르주아 혁명을 통해 혈통에 의한 귀속지위는 해체되었고, 적어도 현대사회에서 계급은 ‘불평등한’ 성취의 대상이 되었다. 인류 역사 대부분을 관통해 온 제도적 계급 사회가 해체된 것이다. 그다음으로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섞여 있기는 하지만 미국의 남북전쟁을 통해 인종 해방의 빗장이 열렸다. 인권의식이 높아지고, 복지국가가 확대될수록 삶의 기준은 비장애인이 아닌 장애인에게 맞춰질 것이다. 그리고... 19세기에 이르러 선거권을 요구하며 시작된 페미니즘이 미투 열풍을 타고 바야흐로 승기를 잡았다.

차별과 불평등에 투쟁해 온 인류의 입장에서 미투 열풍은 '인간 해방'의 과정에 있다. 인류는, 그 중에서도 남성은 저출산으로로 드러난 여성들의 고통에 진즉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미투 열풍의 확대는 그러지 못한 인류와 남성들에 대한 '응징'이 투영되어 있다.


미투 열풍, 광풍으로 나아가지 않기를...

    미투 열풍을 긍정적이지만, 광풍으로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막 불기 시작한 미투 열풍의 열기를 광풍에 대한 경계심으로 식히고자 하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하지만 뜨거운 바람이 미친 바람으로 나아가지 않기 위해 경계하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동물적 본성을 채 떨치지 못한 덜 진화된 남성인 나의 주관적 기우일 수도 있겠지만...

    여성들이 인류의 역사 대부분을 남성 권력의 피해자로 살아왔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마치 입시지옥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는 불행한 청소년들을 만들어 낸 것이 지금의 기성세대이고,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그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듯, 의도와 무관하게 남성으로 태어나고, 길들여진 것에 대해 사죄할 마음도 없지 않다. 하지만, 남성으로서 남성에 대한 최소한의 변론을 하자면, 아마 남성들은 그것이 차마 죄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논리이고, 더우기 복장을 찢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특정 세대를 살고 있는 남성들도, 그리고 여성들도, 막연하게 이전 세대 남성과 여성들에 의해 길들지 않았는가! 딸에게 여성으로서의 순종을 어머니가 강요하고, 그런 어머니 밑에서 동물적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 죄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남성이 길러졌다. 같은 시대에 존재한다고 해서 모두 같은 도덕적, 또는 이성적 잣대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살아온 시대의 깊이가 다르고, 살아온 영역의 넓이가 다르고, AI가 아닌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유전적 차이라는 것이 있다. 그 모든 걸 싸잡아서 ‘미투’의 잣대로 심판할 수 있을까? 그렇기때문에 미투 열풍을 둘러싸고 남성과 여성은 모두 구조적인 가해자이자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더... 우리가 그토록 배척하려고 하는 이성 뒤에 숨어 있는 ‘동물적 본성’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이 부분은 그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추론일 뿐이다. 당연하게도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포유류에 속해 있다. 이성은 관계의 필요에 의해 후천적으로 진화해 온 속성일 뿐, 인간도 역시 동물에 속한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인간의 역사는 100% 순도의 이성으로 쓰인 역사가 아니다. 완벽하게 이성화된 인간은 오히려 직관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창의력을 기대할 수도 없다. 인간이 신도, 동물도 아닌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이성과 동물적 본성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미숙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상상해 보자. 만약에 인간이 이성적으로 완벽하다면... 그 어떤 변수나 우연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하게 상수화되고, 필연적인 존재라면? 인정하자, 인간은 동물로 시작했지만, 관계를 생존 전략으로 선택함으로써 관계를 보다 효율적으로 유지하고 통제할 수 있는 이성의 영역이 확대되어 왔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동물적 본성과 이성 사이는 디지털 신호인 0과 1 사이와는 달라서 딱 떨어지지 않는다. 그 사이에는 역설적으로 '미숙함'이라는 무한대의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내가 사춘기의 절정을 달리고 있는 딸을 이해하기 위해 읽고 있는 책, “십 대라는 이름의 외계인”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자녀는 잘못을 저지르며 배우고, 부모는 그것을 용서하며 배운다.” 내 딸도 사춘기가 처음이지만, 나도 사춘기 딸을 처음 키우는 중이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권력 관계로 억압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고, 그 과정과 과정의 부딪힘을 통해 나의 딸은 하나의 인격체로서 독립하는 법을, 그리고 나는 나에게 종속된 나의 일부인 딸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비록 그 과정은... 지옥이 따로 없을 만큼 고통스럽지만...

    유교와 결합한 가부장제를 살아온 대한민국의 남성들은 마치 내가 사춘기 딸을 대하듯, 여성을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간 갈비뼈쯤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권력은, 아무리 사소한 권력일지라도 공감 능력을 쇠퇴시킨다는 과학적인 연구 결과가 있다. 거창한 국가 권력까지 갈 것도 없다. 가정에서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가정의 권력을 부모들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육식을 즐기는 이유는 인간이 동물로부터 완벽히 분리된 존재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동물의 고통에 공감한다면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처럼 육식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인류 역사를 관통하며 가부장제를 살아온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태도 또한 다르지 않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서로가 지켜야 할 보편적인 선도, 개인적인 선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선은 남성들이 일방적으로 그어 왔고, 그 선에 여성들은 눈물을 머금고 손종해 왔다. 그리고 남성은 현재 여성들은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공감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루고 있는 중이다. 

    남성들은 앞으로 꽤 오랜기간 학습이 필요하다. 처음으로 자신이 아닌 여성들에 의해 그어진 관계의 선에 적응을 해야 한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관계의 선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염치 없지만 여성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여성들이여~ ‘미투’를 외쳐라!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는 것처럼... 미약하게 시작한 성에 대한 남성들의 주관적 견해가 창대하게 폭력적으로 발전한 것이 바로 미투 열풍을 부르고 있는 성폭력이다. 그래서 남성들이 행하는 성에 대한 주관적 견해가 여성의 입장에서 허용 불가능한 선에 접근한다고 생각이 되면... 가차 없이 ‘미투’를 외쳐주기 바란다. 남성들은 최근 미투 열풍을 통해 미투에 대한 공포감을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라고 남성들의 상대화된 성에 대한 유전적 차이를 묵살만 할 것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음"을 아주 조금은 인정해 주기 바란다. 여성들도 그 상대화된 유전적 차이로 인해 지금까지 고통받아 오지 않았는가... 아니, 그저 인류의 절반인 남성을 도려내고 여자들만의 세상을 꾸려 나가고 싶다면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여성들은 그럴 자격이 있다. 이건 죄 많은 남성이 무릎을 꿇고 보다 진화된 인류인 여성들의 혜량을 구하는 것이다. 

    "주여 저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가 자신을 못박은 이들을 위해 한 말이다. 의도가 섞이지 않았을 수도 있는 남성들의 성에 대한 말이나 행동에 대해 여성들이 ‘미투’를 외치면 남성들은 깨달을 것이다. 이 미약한 나의 주관적 성에 대한 견해가 나와 다른 존재인 여성들을 장차 성폭력의 피해자로 만들 수도 있겠구나... 

    뒤늦게 불고 있는 미투 열풍을 환영하고 지지한다. 하지만 미투 열풍의 끝이 여성과 남성의 분리, 그리고 남성들에 대한 복수로 이어지는 광풍으로 나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back2analog





  1. 지난 2월 5일 올렸던 "me too~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와 페미니즘..."을 참조하기 바란다. [본문으로]
  2. 2017. 12. 3. 오마이뉴스 기사, <성폭행 피해자에게 "왜 저항 안했나" 묻는 사회>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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