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과정의 예술화와 대중화

사적 과정의 예술화와 대중화[각주:1]


1. 序 :

매주 토요일, 100만 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다. 대한민국이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던 지난 2002년, 미군의 장갑차에 의해 압사당한 효순이 미선이를 추모하기 위해 시작된 촛불집회가 이제는 대한민국 시위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심지어 지난 2005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노무현 정권이 추진하려고 했던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를 위해 촛불을 들었을 정도니, 대한민국에서 촛불은 좌우를 떠나 자신의 생각을 평화적으로 주장하기 위한 대표 수단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박정희의 516 쿠데타로 시작되어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진 군사독재 시절, 대한민국의 시위를 대표하는 수단은 ‘촛불’이 아닌 ‘화염병’[각주:2]이었다. 그때는 최소한의 민주적인 요구를 하기 위해 화염병 정도는 들어줘야 했다. 국가 권력은 총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1993년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시위대의 화염병 사용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1996년 학생운동의 몰락으로 이어진 연세대 사태 이후 화염병은 저항이 아닌 폭력 시위의 상징이 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한시대를 풍미했던 화염병과 현재 시위 문화를 대표하는 촛불을 단순하게 폭력과 비폭력이라는 이분법적 상징으로 나눌 수는 없다. 화염병은 모든 사람이 던질 수 없지만, 촛불은 모든 사람이 들 수 있다. 화염병은 시대의 분노를 대리해 청년학생들이 던졌지만, 촛불은 시대의 분노에 공감하는 어른과 아이, 여성과 남성, 즉 모든 시민들이 들고 나온다. 2008년 소위 광우병 촛불 때 유모차 부대가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손에 화염병이 아닌 촛불을 들었기 때문이다. 시위라는 영역에서 물리력이라는 ‘전문성’이 해체되면서  오히려 시위가 추구하고 있는 본질인 대중성이 확보된 것은 매우 흥미롭다. 물론 결과와 무관한 ‘저항의 표현’일 수도 있고, 특정 가치에 대한 ‘공감대의 확대’일 수도 있는 시위를 바라보는 견해는 다양할 수 있지만….

지난 11월 19일 있었던 제4차 촛불집회에서는 예술 크라우드 펀딩 7Pictures의 이강훈 작가가 꽃 스티커를 시민들에게 나눠주며 시위대의 행진을 막고 있는 차벽을 ‘꽃벽’으로 만들자고 제안하면서 이전과는 사뭇 다른 시위 문화가 등장했다. 


지난 토요일 경복궁역 앞에서 차벽으로 길을 막고 있던 경찰들을 다시 떠올리다가, 경찰을 비난하는 구호 대신 갖가지 꽃이나 평화를 상징하는 이미지들을 스티커로 만들어서 차벽과 방패 등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회 후 족히 수십만 장이 붙어있을 스티커를 뜯어내면서 경찰들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부딪힐 대상은 분명 그들이 아닐 진대 유연함으로 국민들과 한 편에 서게 만들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7Pictures 이강훈 작가


광화문에 모인 50만이 넘는 시민들은 그 제안에 동의해 행진을 막고 있는 차벽에 꽃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차벽은 ‘꽃벽’으로 변했다. 퍼포먼스는 퍼포먼스일 뿐, 사실 나는 꽃스티커로 뒤덮힌 경찰차를 보며, 정작 시위와는 무관하게 오로지 명령에 의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경찰들이 할 고생을 생각했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는지, 집회가 끝나갈 무렵 몇몇 학생들이 차에 붙어 있는 꽃 스티커를 하나씩 떼기 시작했다. 그러자 대부분의 시민들이 꽃 스티커 제거에 동참했다. 

촛불집회에는 예의 쓰레기 봉투를 들고 다니며 시위대가 흘린 흔적들을 수거하는 학생들이 있다. 아마도 주장은 하되, 그 주장과 무관한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리라…. 그 학생들의 눈에 차벽을 꽃벽으로 만든 “과정”으로서의 퍼포먼스가 끝나고 난 후 경찰차에 붙어 있는 꽃 스티커는 마치 시위대가 길바닥에 흘리고 간 쓰레기처럼 시위와 무관한 누군가를 괴롭힐 흔적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몇몇은 시위는 불편하라고 하는 것이고, 경찰이 불편한 게 걱정이 되면 시위는 왜 나오냐며 반박을 했다.  

꽃벽으로 변한 차벽(왼쪽)과 경찰차에 붙어 있는 꽃 스티커를 제거하는 시민들(오른쪽)….

차벽을 꽃벽으로 만들자며 경찰차에 꽃 스티커를 붙인 행위와 그 행위의 결과가 만들어 놓은 꽃벽을 보며 나는 미술의 개념을 ‘그림을 그리는 행위로서의 과정’[각주:3]으로까지 확장시킨 ‘Jackson Pollock’과 그 과정의 결과인 ‘No. 5’라는 그림이, 그리고 다시 경찰차에 붙은 꽃 스티커를 떼는 행위와 그 행위에 대한 반박을 보며 Jackson Pollock의 행위와 결과에 대해 긍정과 부정으로 엇갈렸을 당대의 비평이 떠올랐다. 


2. 本 :

시위대의 행진을 막고 있는 차벽은 2016년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누군가는 그 벽 앞에서 체념하고, 또 누군가는 그 벽을 깨 부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체념과 파괴는 답이 아니다. 체념으로는 벽의 답답함을 해소할 수 없다. 그렇다고 파괴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시민들은 체념도 파괴도 아닌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것이 바로 촛불이고, 꽃벽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통치 철학이 ‘샤머니즘’이었다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한 시민들의 모습은 1947년 마루바닥에 편 화포 위에 공업용 페인트를 흩뿌릴 수밖에 없었던 Jackson Pollock의 집단적 데쟈뷰다.

 

현대 미술가는 낡은 르네상스 시대의 형식으로 비행기와 원자폭탄, 라디오 그리고 이 시대를 표현할 수는 없다. 모든 시대는 각기 자기 시대만의 방법을 필요로 한다. 

- Jackson Pollock


모든 존재의 목적이 오로지 ‘돈’인 상인의 천박한 철학이 세상을 지배하면서[각주:4] 인간이 만든 자본에 의해 인간성이 부정되는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식민지에 대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반인권적 지배, 민간인 학살로 이어진 두 차례의 세계대전, 그리고 세계대전의 종지부를 찍게 한 히로시마 원폭…. 이러한 자본의 무서움을 통찰해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려고 했던 사람이 맑스와 그 후계자들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안락한 삶과 소비의 달콤함에 빠져 있거나, 그 어마어마한 힘에 체념을 하게 되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시대의 모습을 상징해야 하는 예술가들에게 그러한 현실을 단순히 재현(mimesis)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예술은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현실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원시 공산제 사회의 예술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결과였을지 모른다. 그당시 인류가 부른 배를 두드리며 재미로 알타미라의 동굴에 앉아 동물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계급 사회에 접어들며 예술은 지배 계급의 예술과 피지배 계급의 예술로 나뉘어 진다. 피지배 계급의 예술이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예술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피지배 계급의 예술은 지배 계급의 물리력에 압도당해 예술이라는 어원에서나 겨우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각주:5] 이렇게 예술은 그 과정이나 결과 모두 인류의 생존이라는 공적 영역에서 출발했다. 

계급 사회에서 예술은 지배 계급의 지원을 받으며 여러가지 측면에서 크게 발전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지배 계급에게 귀속된다. 모짜르트의 유명한 장송곡 레퀴엠은 프란츠 폰 발제크 백작이 자신의 이름으로 아내의 장례식 때 연주하기 위해 청탁한 것이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는 당시 피렌체를 지배하고 있던 메디치 가문의 후원이 없었다면 그 이름이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예술의 결과물은 사적 소유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 과정은 공공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만약 그당시 예술의 과정까지 사적 영역에 포함되었다면 그 결과물은 지배 계급을 만족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지배 계급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예술가도, 지배 계급 그 자신도 아닌 그당시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고 감탄할 수 있는 예술의 결과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길고 혹독한 암흑기라고 일컬어지는 중세시대, 모든 예술은 신을 향했다.  신을 찬양하는 음악은 화성학적으로 한 치의 어긋남이 없어야 했고, 신의 자비를 표현하는 그림은  반드시 아름다워야 했다. 중세의 균열이 시작되었던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며 비로소 예술이 관심이 인간을 향하게 되었고, 예술의 과정 또한 공공의 영역을 벗어나 조금씩 예술가의 사적 과정이 중요하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Jackson Pollock은 왜 수식으로 세워진 캔바스에 그림을 그리지 않고 수평으로 뉘어 놓고 물감을 흩뿌리기 시작했을까?


신화는 1947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1월의 어느 날 폴록은 이젤(畵架)에 수직으로 세운 캔버스 위에 토템(=동물) 비슷한 형태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다 무슨 생각에선지 돌연 캔버스를 바닥에 수평으로 눕히고는 그 위로 물감을 들이붓기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여기서 불현듯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그 후 짧은 실험을 거쳐 그는 그 유명한 기법-드리핑(dripping: 흘리기)-을 완성한다.

- 진중권의 현대미술 이야기(1)


Jackson Pollock은 수직으로 세워진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며 여전히 공공의 어느 작은 영역에 속해 있을 자신의 ‘사적 과정’에 회의를 느꼈을 지 모른다. 영웅이 사라지고, 동시에 개개인이 모두 스스로 자신의 영웅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탈영웅주의 시대에, 여전히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공공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Jackson Pollock은 캔버스를 수평으로 눕히며 공공의 영웅이 아닌 자기 스스로 자신만의 영웅이 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것이 자신이 맞닥드리고 있는 현실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이므로….


당시 2차 세계대전이 남긴 상처는 이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자로 잰듯한 기하학적 추상 대신 감성과 무의식에 기댄 폴록의 ‘액션 페인팅에 미술가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각주:6]


미술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Jackson Pollock은 당시 비평가들에게 혹독한 비평을 받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영국의 전설적인 살인마 ‘Jack The Ripper’에 빗대 물감을 피처럼 질질 흘린다는 ‘Jack The Dripper’라고 표현한 것이나, Jackson Pollock의 뿌리기 기법은 무의미한 혼돈과 무질서의 극치라고 혹평하며 ‘Chaos Damn it!’이라고 표현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Jackson Pollock은 이에 ‘No chaos, damn it!’이라고 반박을 했는데, 1999년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 웨일스 대학교 연구원으로 있던 Richard Taylor박사는 Jackson Pollock의 그림 속에 프랙탈 규칙이 있음을 증명하는 논물을 발표했다. Jackson Pollock의 말대로 Jackson Pollock의 그림은 ‘빌어먹을 혼돈’이 아니었던 것이다. 

  

3. 小結 :

최순실 국정 농단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대규모 촛불집회로 이어지면서 지난 12월 9일에는 헌정 사상 두번째로 대통령 탄핵이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시민들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 실패에 대한 상처를, 정치권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이 역풍으로 몰아친 기억을 각각 트라우마로 간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2016년 촛불은 맥락없이 진행되었던 현 정권의 다양한 정치 행위에 ‘최순실’이라는 맥락이 만나면서 촉발되었지만, 그 안에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모든 모순 뿐만 아니라, 최근 다양한 진영에서 겪은 트라우마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시위대를 막고 있는 경찰의 차벽에 시민들은 각자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 꽃 스티커를 붙이며 자연스러운 프랙탈의 규칙으로 멋진 ‘꽃벽’이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마치 Jackson Pollock이 자신의 영감에 따라 미친듯이 누워있는 캔버스에 물감을 흘렸던 것처럼…. 인류의 문명이 지구를 넘어 우주로 향하고 있는 21세기의 보편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2016년 대한민국의 현실 앞에서 차벽에 막혀 체념을 하거나, 차벽을 부수는 직접적인 행위보다 어쩌면 차벽에 꽃 스티커를 붙이는 행위가 오히려 더 ‘현실적’일지 모른다. 많은 시민들이 한땀 한땀 꽃 스티커를 붙여  만든 ‘꽃벽’이 다른 누군가의 다른 목적에 의해 떼어지더라도, 그 또한 매우 ‘현실적’임을 인정해야 한다. 붙이는 것과 떼는 것이 가지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 자체가 그렇치 아니한가!




  1. 본 포스팅은 2016년 2학기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사회문화정책학과 기말과제로 제출했던 리포트임. [본문으로]
  2. 화염병은 제1차 세계대전 때 대전차 무기로 사용되었던 무기이다. 7~80년대 학생 운동권이 사용한 화염병은 적을 제압하기 위한 공격용이라기 보다는 최루탄에 맞선 저항의 상징이었다. 화염병이라는 단어는 정권의 입장에서 시위대를 보다 폭력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선택’된 단어였다. 그당시 학생 운동권은 화염병을 ‘꽃병’이라고 불렀다. 시위의 상징으로서 ‘촛불’을 이야기하려면 ‘화염병’도 ‘꽃병’으로 선택해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3. 원시 예술의 야생성에서부터 이어지는 그의 감성이 <즉흥적인 기록>이 되었고, 결국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그 이미지보다 우선이 되었다. 그렇게 미술의 개념을 <과정>에까지 확장시켰고, 또 다시 언론들과 평론가들을 흥분시켰다. (이광래. 『미술 철학사 3』 2016.) [본문으로]
  4.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기억하는가?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살아 있는 사람의 살을 베는 것도 서슴지 않았던…. 절대왕정을 무너뜨리고 근대를 열었던 ‘시민’혁명은 본질적으로나 결과적으로나 ‘상인’혁명으로 보는 것이 맞다. [본문으로]
  5. 지금의 예술을 의미하는 art(아트)라는 말은 영어단어이지만 어원적으로는 라틴어 ars(아르스)에서 나왔으며 ars는 그리스어 techne(테크네)에서 유래한 말이다. 흔히 우리가 기술 또는 기능이나 공예라는 뜻으로 번역하는 technique(테크닉)은 techne에서 유래된 또 다른 단어이다. 즉, art(예술) 그리고 technique(기술), 두 단어는 동일한 어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출처] 예술의 어원 ㅡ art(아트), techne(테크네)와 musike(뮤지케)의 사이 어디? (작성자 두유) [본문으로]
  6. 정재승, 『과학 콘서트』, 어크로스, 2011(개정 증보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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