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라는 생존의 줄타기를 하고 있는 정치인에게 '가치'를 요구할 수 있을까?

가치와 지향이 다른 두 사람이 서로 맞은 편에서 줄을 잡고 있다. 왼쪽에서 줄을 잡고 있는 사람의 이름은 '진보', 오른쪽에서 줄을 잡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보수'라고 치자. '정치'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이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줄을 한번 타 보겠다고 위로 올라갔다. 정치의 줄타기가 시작됐다. 정치는 진보가 마음에 들어 진보가 있는 왼쪽으로 가려고 한다. 그러자 오른쪽에 있는 보수가 진보로 향하는 정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줄을 마구 흔들어 댄다. 정치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진보와 보수의 중간으로 서둘러 돌아 온다.  그러자 보수도 줄 흔들기를 서서히 멈춘다. 이번엔 자신을 떨어뜨리려고 했던 보수에게 다가가기 위해 오른쪽으로 향한다. 그러자 진보가 보수로 향하는 정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줄을 마구 흔들어 댄다. 정치는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 가지 못한 채 중간 언저리에서 어느 쪽으로 얼마만큼 가야할지 고민에 빠졌다. 

진보와 보수는 정치를 참 좋아한다...고 치자. 그런데 정치가 진보 쪽으로 가려고 하면 보수가, 보수 쪽으로 가려고 하면 진보가 정치를 떨어뜨려 죽이려고 한다. 진보도, 보수도 좋아하는 정치와 함께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죽여 없애는 것이 더 마음 편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진보와 보수가 가지고 있는 줄의 길이와 그 ‘위치’는 사회의 경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진보와 보수,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정치가 모두의 생존을 위협하는 거대한 위험에 맞서 어떠한 '합의'를 해 온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진보와 보수가 맞들고 있는 줄의 길이는 짧아진다. 진보와 보수가 잡고 있는 줄이 짧아지게 되면 정치가 진보를 향하든, 보수를 향하든 그 흔들림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다면 보수와 진보는 점점 더 자신이 원래 있던 방향으로 줄을 늘여간다. 줄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정치는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중심을 잡기 어려워진다. 

이번엔 진보나 보수가 아닌 정치의 입장에서 한번 보자. 정치가 줄타기를 하는 이유가 진보나 보수가 생각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그저 신나게 줄을 타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라면? 그런 줄타기에 익숙해진 정치라면 차라리 줄의 길이가 한없이 길어져 양끝에서 줄을 잡고 있는 진보나 보수의 시야에서 자신이 멀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을까? 진보나 보수가 모두 정치에게 무관심해 지면 정치가 줄 위에서 무슨 짓을 하든 줄을 흔들 이유가 없으니... 

피지배계급의 생존과 지배계급의 안락한 생활을 위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가고 있던 자본주의는 1930년을 전후해 큰 위기를 맞이했던 적이 있다. 일찍이 마르크스가 예견했던 바, 자본주의의 핵심 모순인 과잉생산이 전 세계를 대공황으로 이끈 것이다. 물가는 오르고 화폐가치는 떨어졌다. 수레에 돈을 가득 싣고 가야 겨우 빵 한 조각을 살 수 있었다. 구멍 난 벽을 가리기 위해 차라리 화폐로 도배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었다. 

세계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인류는 각기 세 방향의 실험을 한다. 첫번째는 이미 자본주의라는  관성의 수레바퀴에 올라타 그 질주를 멈추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국가들의 취했던 제국주의 실험...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 개척을 통해 과잉생산의 모순을 해결하려고 했다. 두번째는 상대적으로 자본주의가 덜 관성화된 국가들이 취했던 사회주의국가 건설... 그람시는 러시아 혁명을 "자본주의 발전 - 모순 심화 - 사회주의로의 양질 전환"이라는 도식을 제시한 맑스의 자본론에 반하는 혁명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마지막은 오랫동안 복지국가 모델을 개척해 왔던 북유럽의 노사 대타협 모델...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이러한 다양한 실험들은 역사는 정반합으로 발전한다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이론 안팎을 오가며 서로에게 해석과 설명이 쉽지 않은 영향을 미쳐왔다. 때로는 진보와 보수가 양쪽에서 잡고 서 있는 끈의 길이를 줄이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했지만, 반대로 우리나라처럼 뒤늦게 자본주의가 이식되어 발전하는 과정에서 그 끈의 길이가 한없이 길어진 경우도 있다.

정치는 이렇게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합의'라는 생존의 줄타기를 하고 있다. 어쩌면 정치인에게 더 중요한 것은 '가치'가 아니라, '합의'일지 모른다. 그런 정치인에게 절대적 진리가 아닐 수도 있는 '가치'를 요구하는 것이, 또 정치인이 정치의 정체성을 망각한 채 그 '가치'를 넙죽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치인은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합의'라는 생존의 줄타기를 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back2analog




Comments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