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전쟁...


프레임(frame)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이에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변혁이다. 프레임 재구성은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을 바꾸는 것이다. 프레임은 언어로 작동되기 때문에, 새로운 프레임을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가 요구된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우선 다르게 말해야 한다. (조지 레이코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인용)

jtbc 손석희의 뉴스룸에서 최순실 국정농단의 확실한 증거로 테블릿 PC 내용을 특종으로 보도하면서 촉발된 현 시국의 수면 위 아래를 넘나드는 세 개의 프레임이 있다.
첫째,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진영 프레임
현 시국은 명백히 더이상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국민” 대 아직도 박근혜를 법적인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있는 “정치권”의 프레임이다. 그렇기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언제까지 이 여자 이름 뒤에 대통령이라는 말을 붙여야 할지 모르겠지만…)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이 ㅅㄲ가 왜 아직도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지 궁금한가?)는 “국민 대 정치권”의 프레임을 깨고 정치권(이른바 “여당 대 야당”) 안으로 그 프레임을 이동시키기 위해 온갖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중이다. 국민들이 한목소리로 부르짖고 있는 하야 요구는 못 들은척 하면서, 거국내각에 이은 국회 총리 임명 등 야당의 요구를 야금야금 들어주고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심지어 박지원은 “대통령의 함정에 빠졌다”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두번째, 바닥 지지율 5%를 찍고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는 동정 프레임
박근혜와 이정현이 또다른 전략으로 구사하고 있는 것이 바로 “김빼기”와 “버티기”인 것 같다.
어제 대학 70주년 기념 행사를 마치고 부모님이 계신 쌍문동 본가에서 외박을 했는데, 아침에 어머니가 밥을 차려 주시며 “박근혜가 불쌍하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는 심지어 “여자한테 너무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씀하시는데, 나는 기가 차고 코가 막혀 “박근혜 보다 부모님이 더 불쌍하시다.”라고 말씀드렸지만, 단순히 웃어 넘길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고양이가 쥐를 생각하는 게 말이 안 되듯, 이건 쥐가 고양이를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의도와 가장 무관하게 형성되는 것이 프레임인지도 모른다. 의도가 강할 수록 반발력 또한 같이 거세진다. 아무리 승세를 잡아 강하게 밀어 붙인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김을 빼면서 버틴다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강하게 밀어 붙이면 안된다가 아니라 김빼기와 버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세번째, 모험주의적 물리력 프레임
‘오랜만’에 광장이 열렸다. 개인의 고단한 삶이 먼저인 사람들이 “박근혜 하야”라는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광장으로 모이고 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가슴에 작은 파도를 하나씩 안고 있다. 그 작은 파도가 같은 방향성을 가지게 되면 그 힘은 누구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 성난 파도의 힘을 약화시키는 프레임이 하나 있다. 바로 “폭력 VS 비폭력” 프레임이다. 
광장을 물리력 프레임으로 이해하고 있는 분들께 묻고 싶은 게 있다. 폭력은 공격용인가, 방어용인가, 아니면 성난 민중의 분노의 상징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광장에서의 폭력은 전술도 전략도 아닌 미개한 감정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이 항일 무장투쟁시기인가? 만약 광장에 모인 대중들의 쪽수를 믿고 폭력시위는 주장하는 거라면, 폭력시위로 인해 광장의 가능성은 크게 위축될 것이다. 
시대라는 프레임은 변했는데, 우리는 아직도 과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변화'에 대한 지향과 창의적 가능성의 차이이다. 87년 6.10 항쟁을 이끌었던 386세대가 고리타분한 구세대로 인식되고 있는 이유는, 시대는 변하고 민중의 잠재력은 훨씬 더 다이나믹하게 성장했는데 여전히 개정되지 않은 과거의 케케묵은 매뉴얼을 가지고 현실을 이해하고 있으며, 그 매뉴얼에 현실을 강제로 뜯어 맞추려고 하는 고착된 강박 때문이다. 

어제 촛불집회 사회자에 의해 꼰대로 전락하는 도올의 모습을 보며 다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다소 긴 감이 없지 않았으나 광장의 대중들은 도올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고, 도올은 지난주 준비되지 않은 즉흥 연설이 아쉬웠는지 두툼한 종이에 연설문을 미리 써 왔다. 사회자는 나름 예의를 갖추긴 했지만 결국 마이크를 끄고, 반 강제로 도올을 무대에서 끌어내렸다. 도올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석학이다. 김제동의 헌법 개그(?)는 그래도 자주 접할 기회가 있지 않은가!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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