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수...


서른을 코 앞 둔 스물 아홉살 때 난 내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나이 서른에 자살을 하겠다는 십대 시절 다짐이 떠오르기도 했고, - 십대가 생각하는 나이 서른은 삶의 의미가 없는 나이였던 것 같다. 요절한 천재들에 대한 동경도 있었던 거 같고... - 연애도 안(못)하고 주로 후배들 뒤치다꺼리를 하며 이십대를 보냈는데, 그 후배들이 하나, 둘 지 짝을 찾아가는 걸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때 난 생각했다. 내가 나쁜 짓을 하고 돌아와도 나를 이해하고 품어줄 수 있는 가족 이외의 단 한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죽어라 소개팅을 해서 만난 사람이 지금의 은기엄마다. 
사십을 바라본 아홉수인 서른 아홉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보낸 것 같다. 그때는 오롯이 나만 바라봐 주는 은기와 은슈가 있었으므로...
마흔 아홉... 오십을 몇 달 앞 둔 지금 다시 스물 아홉 때 느꼈던 묘한 허전함이 다시금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신데렐라와 네남잔가 하는 드라마를 보며 왜 아빠는 재벌이 못 되었냐는 아이들의 진심일지도 모를 투덜거림에 서운함을 느껴서일까? 모처럼만의 가족과 함께하는 연휴에 아침부터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누룽지에, 김치찌개에, 계란말이에, 오이냉국을 인터넷 레시피를 보며 해다 바쳤는데, 마누라는 "설거지도 자기가 할 거지?" 익숙하지 않은 요리질에 주방이 난장판이 되었으므로, 난 당연히 설거지를 포함한 뒤처리까지 할 생각이었다. 설거지를 마치자 한참을 뒹굴거리며 TV를 보던 아이들은 "아빠, 배고파. 라면 끓여줘."
그래, 나의 악행까지 이해하고 품어주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지금 바람은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만 되지 않는 것... 
또다시 난 서럽고, 힘들고, 외로운 아홉 수를 보내고 있다. 첫번째 찾아온 아홉 수는 달달한 연애와 결혼으로 이겨냈지만, 지금은 솔직히 죽음 외에 다른 대안이 보이질 않는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설마 내가 자살이야 하겠는가...
나를 대신해 담배만 몇 대 죽이고, 라면을 끓이기 위해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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