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견만리>, 서문을 읽다 삼천포로 빠지다...

또한 집밥 열풍이 불고 편의점 상품이 뜨는 것은 단순한 기호의 변화라기보다는 경제의 기조 변화를 반영한 트렌드다. 전세계가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하면서 우리의 일상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 알라딘 eBook <명견만리: 미래의 기회 편> 중에서


트렌드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트렌드를 읽어내는 관점 또한 중요하다. 최근 일고 있는 ‘집밥 열풍’은 저성장의 징후로 볼 수도 있지만, 공동체 파괴의 결과일 수도 있다. 


❏ 인류진화의 키워드 ‘관계’

인간과 인간이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공동체는 인류의 결핍이 낳은 가장 풍요로운 산물이다. 인류는 생존에 필요한 결핍을 보완하기 위해 관계를 선택했다. 그렇게 선택된 관계는 인류 진화의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생존과 관계 없는 능력은 사라지고,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능력은 확대, 강화되어 온 것이 곧 인류가 걸어온 진화의 과정이다. 인류가 생존을 위해 관계가 아닌 강한 이빨과 발톱을 원했다면, 인류는 문명이 아닌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 분명하다. 인류는 관계를 더욱 강화시키는 위해 분절적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수렵과 채집에서 벗어나 관계를 보다 안정시키고자 하는 강한 정착의 욕구가 농업혁명을 가능하게 했다. 어디 그 뿐이랴, 인류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성’ 또한 갈수록 정교해지는 관계의 유지에 방해가 되는 ‘동물적 본성’을 억누르는 과정에서 출현했을 가능성이 높다.


❏ ‘소비’를 통해 결핍을 해소하는 신자유주의형 인간의 탄생  

따지고 보면, 제도와 관습을 포함하여 인류가 성취한 그 모든 문명은 관계를 위해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of the 관계, by the 관계, for the 관계…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뉘어진 계급사회 또한 지배와 피지배라는 관계가 있어야 그 유지가 가능하다. 마치 빙산의 일각이 빙산의 잠긴 부분을 딛고 수면 위로 떠 오를 수 있는 것처럼, 계급사회에서의 지배계급 또한 지배할 껀덕지인 피지배계급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결핍의 산물이고, 결핍을 보완하기 위해 시작되었으므로 결핍이 사라지고 나면 관계는 깨질 수밖에 없다. 계급이 생산력 발전으로 인한 잉여생산물로 인해 발생한 것처럼,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과잉된 생산은 인간이 서로 구차하게 관계를 맺지 않아도 소비를 통해 모든 결핍을 해소할 수 있는 인류 최초의 관계 해체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어쩌면 자본주의는 지금까지 인류가 성취해 온 문명과 전혀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신자유주의라는 경제 토대 위해 관계보다 소비가 익숙해진 상부구조를 가진 인류 앞에 이제 저성장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화두가 던져졌다. 


❏ 4차 산업형명 ‘트렌드’에 대한 이해보다 관점이 중요하다!

만약 빙산의 일각이 수면 아래 잠겨있는 부분을 잘라내고도 수면 위에 자유롭게 떠 있을 수 있다면? 노동자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이윤을 챙기고 있는 자본가들이 구질구질하게 그 관계에 의존하지 않아도 이윤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수 있다면? 한때 인간의 능력에 필적하는 인공지능의 개발에 대해 우려를 표했던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2015년 10월 온라인 커뮤리티 레딧에 “기술의 발전이 불평등을 가속시키고 있다”며 “로봇보다 자본주의가 더 무섭다”고 경고했다. 스티븐 호킹의 경고처럼 4차 산업혁명 속에는 노동자들과의 관계를 끊어내기 위한 자본가들의 욕망이 내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면, 노동자와 관계를 통해 해소해 왔던 자본주의의 결핍이 사라지게 되므로 당연히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도 소멸하게 될 것이다. 그 관계의 소멸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부연은 따로 하지 않겠다. 

그런 관점에서 가끔씩 SF 영화를 통해 등장하는 인공지능이 장차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는 미래사회에 대한 공포는 본질과 전선을 은폐하기 위한 음모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걱정해야할 미래사회의 문제는 인간대 인공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자본가대 노동자일 가능성이 높다. 


❏ 다시 ‘관계’의 관점에서…

우리가 트렌드를 파악하고 시대를 통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는 가장 기본적은 것을 무시한 채 너무 멀리만 보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인류는 직립보행을 통해 이전보다 더 멀리 볼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눈이 발에 달려 있지 않고 머리에 달려 있는 이유는 분명 멀리 보아야 생존에 유리하다는 진화론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눈이 아무리 멀리 내다볼 수 있어도 거기까지 가기 위해선 내 발이 움직여 주어야 한다.

만리를 내다보는 눈으로 트렌드를 파악하고, 시대를 통찰하는 이유는 내 발이 그 결과를 지향하도록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다. 

현재 우리의 발은 인류 진화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관계를 무시하고 소비라는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다. 우리가 그토록 부러워하는 북유럽 복지국가의 시작이 관계를 부정하는 투쟁의 결과가 아니라, 노사대타협이라는 관계 개선의 결과라는 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투쟁이 소모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투쟁이든 타협이든 관계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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