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전'의 사전적 정의와 현장의 의미


의전...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정해진 격식에 따라 치르는 행사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의전의 사전적 정의를 현장의 의미로 바꾸면행사에 참석한 내빈들을 서운하지 않게 대접(?)하는 행위이다. 하여 행사를 준비하는 입장에선 행사 자체 보다 의전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다. 어찌보면 당연한 먹이사슬이다. 행사의 내용에 이끌려 참석한 대중들의 불만은 파편이 되어 공기 중으로 사라지지만, 행사에 잠깐 있다가 떠나는 내빈들의 의전에 대한 불만은 행사를 준비한 주최측에 보다 구체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원래 칭찬은 의례적인 경우가 많고, 불만은 침소봉대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적어도 행사의 결과에 대한 칭찬과 불만은 등가적이지 않다. 

딜레마의 시작... 바로 의전에 대한 불만 때문에 많은 행사의 주객이 전도가 된다. 행사에 참여한 다수의 만족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소수 내빈들의 불만을 최소화하는 것을 넘어, 마치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고 난 후 느낀 것과 같은 흡족함을 그들에게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거면 행사를 할까... 하는 회의가 만도 하다. 그래서 일 벌이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해 봐야 본전도 못 뽑으니까... 차라리 안하면 본전은 지킬 수 있으니까... 또한 의전으로 인해 지루해진 행사에 대한 불만은 행사 주최측이 아닌 눈 앞에서 시간을 질질 끌고 있는 내빈들을 향한다. 아, 참으로 절묘한 '의전'의 법칙이여~

물론 많은 행사를 준비해 입장에서... 의전의 절묘함은 수없이 많은 행사를 준비한 전문성이 축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개고생의 댓가가 칭찬이 아닌 위에서부터 떨어져 내려오는 질책이라면 누가 다시 그런 행사를 준비하고 싶겠는가? 그렇다고 행사준비를 못하겠다고 거부할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면? 그 유일한 탈출구가 바로 우리고 많은 행사에서 보고 있는 '의전'이다. 


모든 것이 등가적이지는 않지만 양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열정이 사그라들지 않았거나,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별종들의 노력으로 인해 마련된 행사에 참석할 때... 우리는 행사를 준비한 실무자들에게 좀 더 고마운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사소한 감사의 마음을 침소봉대해 표현해 준다면 더 할 나위 없고... 실무자들에게 있어 현장에 참석한 대중들의 만족감은 개고생에 대한 보상일 뿐만 아니라, 나중에 의전 실패에 대한 질책에 맞설 방패가 되기 때문이다. 뒤에서 욕만 해 대지 말고... 아니면, 당신이 직접 한 번 해 보시던가...


의전이 사전적 의미에서 매우 동떨어진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이유는 대략 다음의 세 가지일 것으로 추측한다. 

첫째, 한국사회의 빌어먹을 수직 구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행사를 지시한 사람이나, 행사를 준비한 사람이나, 행사에 참석한 내빈과 대중이 모두 동등하다고 느끼는 사회라면 적어도 '의전'이 가지는 사전적 의미의 전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잘못된 소통 구조 때문이다.

마이크를 잡고 하는 소통은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일방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을 일방적으로 '배설'하는 행위를 소위 소위 소통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거기에 만족하는 사람은 다른 소통의 대안을 찾지 않는다. 

셋째, 그러한 '의전'에 주관적으로 만족하는 대중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이 제일 심각한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설명도, 해결도 쉽지는 않다. 돌려 얘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반드시 일치하는 당파성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두 계급은 자본가와 노동자지만, 그 안에는 노동자의 당파성을 갖는 소수의 자본가도 있고, 자본가의 당파성을 가진 다수의 노동자도 있다. 그리고 노동자를 절친으로 둔 자본가와 자본가를 사랑하는 노동자도 있을 수 있다. 즉, 내가 의전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행사를 중심으로 관련된 사람들의 정체성을 주최측의 상부와 실무자, 그리고 참석자의 내빈과 일반대중으로 분류했지만, 그 사람들의 심리적 좌표는 반드시 그 정체성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비단 의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사회 문제에 적용된다. 


'의전'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 너무 먼 길을 돌아왔다. 어쨌든 나는 결론적으로 의전에 이러한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

"행사를 준비한 주최측의 중간 간부가 자신들의 편의나 책임의 회피, 전가를 위해 대중의 지지가 필요한 내빈과 내빈과의 소통이 필요한 대중들을 갈라놓는 행위"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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